요세미티의 멋진 나무들(2)
Posted 2014. 9. 9.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Wild Yosemite해발 고도 2천 5백-3천 미터 대의 요세미티의 색다른 풍경들 가운데 금세 나를 매료시키고 이 산의 친구가 되라고 손짓해 준 것은 태고 이래 이 산의 터줏대감들로 든든히 서 있는 나무들이었다. 처음엔 엄청난 키와 배 둘레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지만, 점점 산을 지키고 빛내는 모습에 경외감뿐 아니라 마치 오래 사귀어 온 듯한 친근함과 평온함을 선사해 주기에 이르렀다.
나흘간 요세미티를 걸으면서 처음엔 우람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레드우드와 전나무, 소나무들에 압도됐지만, 서서히 세월의 흔적을 안고 겉껍질이 벗겨진 나무들과 부러져 쓰러진 나무들이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나우웬 식으로 표현하자면 상처 입은 나무들(Wounded Trees)이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상처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러진 나무들이 군데군데 많이 보였는데, 멀쩡한 나무들을 돋보이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건 오히려 눈길을 더 끌기도 했다.
요세미티의 상처 입은 나무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미지를 선사해 주었다. 몇 걸음만 옮기면 겉과 속을 따로 볼 수 있었는데, 겉면을 보는 것과 속을 보는 것은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좌우가 바뀔 뿐만 아니라, 주변 풍광도 달라지는 게 나무 하나가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하는구나 싶었다.
어떤 나무는 속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러지고 바스라졌는데도 원래 있던 형태를 꿋꿋이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 상태로 서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처가 심했지만, 덕분에 마치 투명 나무처럼 멀리 있는 나무를 빛내 주었다. 멀쩡한 나무 못지 않게 이런 상처난 나무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 읽혀져 살짝 감동 먹었다.
요세미티의 나무들에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는 건 유난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하늘이 푸르다고 할 때 쓰는 스카이 블루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풍광 속에선 아무 데나, 아무 나무나 찍어도 한 장의 엽서가 됐다. 일부러 잘 생기고 멋진 나무들을 골라 찍지 않고 눈에 보이는대로 셔터를 눌러도 딱히 버릴 사진이 없었다.
인생도 그렇지만 자연도 항상 스카이 블루할 수만은 없는데, 요세미티에선 흐린 하늘마저 분위기가 있었다. 이럴 땐 높은 봉우리와 어울리는 나무들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나무가 자라는 한계선보다 높은 키를 가진 봉우리들은 회색이나 잿빛으로 민머리를 드러내는데, 그냥 봐도 멋지지만 아랫쪽의 나무들과 함께 멀찍이 잡아보면 환타지 영화 속 풍경이 된다.
'I'm traveling > Wild Yosem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세미티 안내판 (2) | 2014.10.24 |
---|---|
이깟 기다림 쯤이야 (2) | 2014.10.23 |
요세미티 쓰레기통 (2) | 2014.09.08 |
누구나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2) | 2014.09.05 |
요세미티 150주년(1864-2014) (2) | 2014.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