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은고개에서 벌봉까지
Posted 2014. 9. 1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하남에서 광주로 가는 43번 국도로 10여 분 가다 보면 광주시가 시작되고 조금 내려가면 남한산성 들어가는 길과 만난다. 은고개는 하남과 광주의 경계를 이루며, 차로 2-3분 들어가면 음식점 몇 곳이 자리잡고 있는 조용한 동네다.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등산로를 찾아 슬슬 올라가면 1km 남짓 차 한 대가 다니는 포장도로가 이어지고, 곧 등산로가 나온다.
등산로에 접어들면 완만한 경사에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나오면서 능선에 오르면 마루공원에서 연결된 하남위례길과 만나고, 왼쪽으로 계속 가면 남한산성 동북 방면에 이르게 된다. 은고개부터 남한산성까진 거리로는 3km 조금 넘는 산길이지만 이렇다 어려운 구간이 없어 빠른 걸음으로 오르면 한 시간이면 충분히 산성 앞에 당도할 수 있다.
추석 음식 가운데 남은 걸로 작은 주먹밥을 싸 왔는데, 봉구스(BonGousse) 스타일(1/27/14)로 호일을 눌러 납작하게 만든 다음 밥버거 먹듯 두세 번 먹으면 끝!인데, 맛이 제법 있었다. 냉장고에 있던 떡 한 덩어리와 사과 조각 그리고 홍차 한 컵을 곁들인 둘만의 소박하고 오붓한 산중오찬은 산해진미 부럽지 않았다.
남한산성은 고도가 5백 미터 정도 되는 그리 높지 않은 산지인데, 아이폰 고도계 앱으로 재 보니 이미 우리는 4백 미터 중반대에 와 있어 거의 평지를 걷는 기분으로 20여분 남짓 1km를 걸으니 산성 외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성 저쪽, 그러니까 성남에서 오는 남문과 서울 마천동에서 오는 서문쪽은 등산객들이 상당히 많지만, 북문과 동문쪽은 아는 사람들만 오고, 특히 은고개에서 오는 이 길은 다니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 호젓했다.
남한산성 성곽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잘 보수해 놓았지만, 여긴 외곽지대인데다 그리 발길이 많지 않은지라 세월에 훼손된 채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찾는 이들을 맞는다. 이런 데는 괜히 보수한답시고 현대식으로 새 벽돌 쌓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보기 좋은가.
산성 안으로 들어가 성곽에 서서 바라보면 팔당대교와 강 건너 예봉산, 그리고 우리동네 검단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 하단에 하얗게 보이는 게 한강이고, 그 위에 팔당대교가 서 있다. 가운데 보이는 검단산 위로 흰 구름이 뭉실 피어오른 모습이 참 한가하고 평화롭다.
봉우리라기보다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처럼 생긴 벌봉까진 4백 미터를 더 가야 하는데, 이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딱히 볼 건 없다. 다음엔 반대 방향으로 1km 정도 가서 한봉과 큰골이 어떻게 생겼는지 봐야겠다.
벌봉 가는 길에 아치형 돌문이 서 있는데, 봉암성 옹성이다. 남한산성에는 옹성(甕城)이 몇 개 있는데, 성문을 엄호하기 위해 성문 바깥쪽에 반원형으로 쌓은 성이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남한산성의 메인 격인 동서남북 문을 연결한 산성 성곽 말고도 군데군데 옹성을 세워 전체적인 규모가 커진 걸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동북 방면에 있는 이곳은 산성을 찾는 이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남한산성엔 자주 왔지만 주로 북문으로 다녔고, 은고개-벌봉 코스는 거의 2년 반만인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 깔끔하게 보수해 놓은 곳보다 훼파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좋았다. 반듯하게 담장 키를 맞춰 놓지 않아 삐뚤빼뚤한 성곽 주위에서 아무렇게나 자라고, 피어오른 풀들이 저 너머 보이는 뭉게 구름과 자연스레 어울려 보이는 것도 좋았다.
최종 목적지인 벌봉에 올라 보니 그리 높지도 않고 나무에 둘러싸여 있기도 해서 탁 트인 전망이 확보되진 않았다. 대신 아랫쪽 바위 위로 우리 그림자가 비춰 벌봉 인증샷은 그림자로 대신하기로 했다. 2012년 설날연휴에 은고개에서 벌봉까지 (1/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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