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득템
Posted 2015. 9. 2.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모락산 사인암 막바지 나무계단 한 칸에 껌딱지만한 크기의 새똥 비슷한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는데, 벌 한 마리가 제 몸뚱아리보다 서너 배는
큰 잠자리를 낑낑 끌며 밀며 옮기고 있었다. 반쯤 잘려나간 잠자리를 이렇게 물어
옮기는 걸 보면 엄청난 식량거리를 득템한 모양이었다. 음~ 잠깐, 벌이 잠자리를
먹어치울 수 있던가.^^
죽은 녀석이야 그렇다 치고, 살아 있는 벌도 애시당초 이렇게 바닥에 눕거나 서 있을
애들이 아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게 이들의 삶인데, 둘 다 어쩌다가 잠시 또는 영영
날기를 포기하고 바닥을 거처 삼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벌은 이 득템한 식량을 안전한
곳으로 운반하는 중이니까 힘든 줄도 모를 것이다. 비록 무심한 등산객의 발에 밟힐
수도 있을지언정 오늘의 횡재만큼은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자세였다.
벌에겐 대단한 노동이었던 모양이다. 평소엔 도도하게 왱왱거리면서 다들 물렀거라
하며 공중을 주름 잡던 녀석도 지상에선 한 눈금 옮기는 게 하세월이다. 생각처럼 쉽게
안 움직여지는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오늘의 득템을 절.대.로. 놓지 않고 있었다.
뜻밖의 횡재에 어울리는 수고는 힘든 줄 모르게 했지만, 둘의 운명이 그후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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