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박힌 나무못
Posted 2017. 9. 30.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등산 인구가 늘어나면서 오솔길 같던 산길이 하나 둘씩 번듯한 등산로로 바뀌어 가고 있다. 바위가
많아 조금 험한 길엔 철 계단을 놓아서 편히 다니게 하지만, 모든 계단을 그리 할 순 없는지라 웬만한
경사진 곳엔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적당한 돌을 놓거나 통나무로 발판을 놓은 다음 흔들리거나 구르지
않도록 나무 토막을 나무못 삼아 양쪽에 박아 고정시킨다.
잘 박힌 나무못은 사람들이 나무 발판을 밟고 지나는 무게를 온몸으로 지탱하는데, 나무 발판은
불가불 몇 해 지나면서 헐거워지고, 눈비 바람에 흙이 파이면서 틈새를 드러내고 급기야 끝쪽이 슬슬
갈라지다가 바스러지기 시작한다. 모락산 올라가는 길에 찍히고 바스라져 마치 눈이라도 내린 것처럼
땅에 흩뿌려져 있는 가느다란 나무 조각들은 나무 발판의 고된 운명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신기한 건, 나무 발판들이 수난을 당하는 사이에 나무못들은 생각보다 의연하게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통으로 박기엔 조금 두꺼웠는지 반을 쪼개 멋진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몇 년을 꿋꿋하게 버티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서 있었다. 이렇게 결이 곧기에 나무 발판을 받쳐 주는
나무못에 불과하면서도 당당해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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