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계단들
Posted 2018. 5. 1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산에 처음 다닐 땐 저 앞에 계단 구간들이 보이면 겁이 덜컥 나곤 했다. 저길 어찌 올라갈꼬,
얼마나 길까, 중간에 다리힘이 풀리진 않을까 걱정이 태산같이 비구름처럼 몰려왔다. 그러다가
중간에 쉬면서 숨 좀 돌리면서 어떻게 어떻게 계단 구간을 지나고 나면 제법 커다란 성취감이 선물로
주어지곤 했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계단 구간을 내려오다가 막 올라오는 이들의 가쁜 숨소리를
들으면 그 고생 다 안다는듯 으쓱~ 하기도 했다.
조금씩 등산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산길 계단들이 다 똑같지 않고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흙계단부터 돌계단, 나무계단, 그리고 철계단에 이르기까지
재질도 다양하고, 길이나 높이도 산세에 따라 다양하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친숙해져 갔다. 여전히 앞을 보면서 성큼 오르기보다는 발 아래를 보면서 타박타박 천천히 발을
옮기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겁을 먹진 않는 정도가 됐다.
늘 다니는 산이라 익숙해질법도 하지만 여전히 계단 구간은 힘들다. 여전히 꾀가 나고, 이쯤에서
돌아서고픈 유혹이 끊이지 않고 네버엔딩 찾아온다. 굳이, 다음에 같은 생각이 찾아오면 에이 그래도,
조금만 더,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서 거의 억지로 걸음을 내딛는데, 어떤 땐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먼저 발을 내딛게 하는 기특한 순간이 찾아 오기도 한다. 내 숨차 하는 호흡과 무딘 다리와
박약한 의지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지 나도 모르는 일이 산에선 종종 일어난다.
4년 전에 갔던 양평 백운봉은 9백 미터가 넘는 정상 진입 구간에 한 눈에 보기에도 여러 번
꺾이는 계단이 놓여 있었는데, 산세로 봐서 그냥 오르기엔 위험한 바위 구간이어서 헉헉대고
올라가다가 마지막 힘을 쏟게 만들었다. 8년 전에 갔던 사패산은 바닥철판과 계단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숫자부터 보고 올라갈지 말지를 결정하라는 건지, 아니면 심호흡 단단히 하고
오르라는 건지, 어쨌든 힘든 계단구간이었지만 바위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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