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칼리처..
Posted 2010. 11. 11. 14:17, Filed under: I'm traveling/Wonderful CapeTown
어느 도시나 두 얼굴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밝고 화려한 면과 가리고 감추고 싶은 어두운 면 말이다. 케이프타운도 마찬가지였다. 국제적인 관광지다운 수려한 풍광이 시선을 잔뜩 끌어당기는 가운데, 막상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흑인 빈민 밀집 구역인 칼리처였다. 가로 세로 4×6 km 안에 무려 80만 명이 거주한다는 대표적인 슬럼가이다. 케이프타운에는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 양편에 이런 곳이 6개가 있다는데, 가까이 갈수록 옛날 어렸을 적 우리네 판자촌 같은 풍경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다 동원해서 어떻게든 집 모양을 갖춘 것 같았다. 좁고, 추레하고, 불편해 보였다. 달동네 판자촌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집이 이렇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도무지 헤어나올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앞에 보이는 파란 것들은 공동 화장실로, 군데군데 십여 개씩 놓여 있었다. 아침마다 전쟁일 듯 싶었다.
하늘엔 마치 바늘 하나에 여러 가닥의 실을 꽂은 듯 수십 개의 전선을 지탱하고 있는 전봇대가 우뚝 솟아 있었다. 전주 하나에 10-20집이 전기를 받아 사용한다고 하는데, 불행하게도 전기료는 선불제로 일정한 금액만큼 Pre-paid하는데, 문제는 그만큼을 쓰고 나면 전기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아껴서 나눠 쓰는 이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충전한 다음엔 풍풍 다 써 버리고 그 다음엔 굶듯 할 것이다.
조각 조각 쓸만한 것들을 이어붙여 집을 만들었다. 바람 구멍 솔솔, 비바람에 날라갈 것 같지만,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았다. 개중에 어떤 집은 차도 있고, 위성 TV 안테나도 달아 놓았다. 이 안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은 냉정한 것 같았다.
칼리처는 줄루족과 함께 대표적인 토착 부족인 코사족 말로, 뜻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새 집"(New Home)이란다. 현실을 풍자한 건지, 아니면 희망을 추구하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 나머지 5개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한다.
수도 시설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듯, 물 길러 나오고 빨래하러 나온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익숙한 일상을 사는 그녀들의 표정은 밝았다.
아이들은 예전 우리네 어렸을 적마냥 동네 길가에 앉아서 흙장난하기도 하고, 우루루 몰려다니며 재미있게 놀고 있다. 타이어를 굴리며 타고 노는 녀석은 제일 신났다.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은 어디다 내놔도 뒤지지 않을 만큼 밝았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다.
이방인들의 출현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포즈를 취해 준다. 한 녀석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엔터테이너"라고 계속 중얼댄다. 자신의 소망이 그건지, 아니면 카메라를 든 나를 그리 부르는 건지.
구멍가게밖에 없던 이 동네에도 얼마 전에 대형 마트가 생겼다. 워낙 인구가 많아서인지 마트 출입 공간을 마치 에스컬레이트처럼 구비구비 꺾어 놓았다. 언듯 보면 살림과 형편이 나아진 것처럼도 보이지만, 대형 마트가 생기면 없던 물욕도 생기게 마련이고, 싼 값으로 유혹하는 지름신 앞에 굴복하지 않을 장사가 없을 것이다. 현재로선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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