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캐년 트레킹5 - 꼭두새벽에 Narrows로
Posted 2012. 8. 17.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Wow! Grand CanyonAngels Landing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자 7시 가까이 됐다. 다 내려와서 길가에 흐르는 계곡물로 대충 씻어냈긴 했지만, 돌풍을 맞은 머리카락 사이와 온몸엔 모래가 끼어 있었다. 셔틀 버스를 타고 Shiker님과 만났는데, 이분, 당연히 내로우스(Narrows) 가는 반대방향 셔틀을 타자고 한다. 이 저녁에! 둘 다 후줄근하고 초췌하고 흔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서 있는데!
아니, 아니, 아니 되오!! 우린 더 이상 못 가오! 세상에, 흔치 않은 여행 기회에 뭐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가 보고 싶다고 요청해야 하는 우린 못 가겠다고 하고, 서부여행의 하이라이트 격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이는 가자고 하고. 결국 공원 입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Shiker님은 내일 첫 셔틀이 출발하는 6시에 다시 오자는 의외의 제안으로 우릴 놀래켰다. 이분, 의외로 집념이 있으시다.
도대체 Narrows가 어떤 곳이길래 새우잠을 자고 선선해진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다시 자이언에 들어서야 했을까. 졸린 눈으로 차창 밖을 보니 족장들의 바위(Court of the Patriarchs) 셋이 나란히 서 있다. 왼쪽부터 아브라함봉, 이삭봉, 야곱봉인데, 가장 높은 아브라함봉은 2,100미터다.
Shiker님이 꼭 보여주고 싶었던 Narrows는 우리처럼 30분 정도 들어갔다가 돌아나올 수도 있지만, 하루 코스로 길게 다녀오는 이들도 꽤 많은 인기 코스다. 처녀 강(Virgin River) 물줄기를 발목에서 무릎, 허리에서 가슴께까지 담근 채 거슬러 올라가면서 양옆으로 펼쳐지는 깎아지른 바위와 산의 절경을 감상하는 역시 상급 난이도인 Strenuous(격렬한) 코스다.
셔틀에서 내려 계곡에 이르기까지 15분 정도 걸어 들어가는데, 초입에서 새벽 산보를 나온 사슴을 만났다. 사람들이 급히 카메라를 꺼내 자신을 찍어대는데도 익숙한 풍경인지 팬 서비스인지 급히 움직이지 않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드디어 버진 강물에 이르렀다. 물길을 걸어야 하는 관계로 Shiker님은 여행 준비물로 등산 스틱을 가져오라고 해서 세 개를 갖고 가 그 중 하나는 여행 첫날 그랜드 캐년에 헌납(?)한 상태라 g와 하나씩 나눠 짚기로 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한쪽에 지팡이로 쓰던 나무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Narrows를 걸었던 이들이 다음 사람들을 위해 두고 간 것들이다. g에게 스틱 둘을 주고, 나는 길고 날렵한 나무 하나와 PVC 재질 하나를 골라 짚고 물속을 걷기 시작했다.
시원하다 못해 상쾌했다. 이 기분을 맛보게 하려고, 이 풍경을 보게 하려고 어제 저녁 녹초가 된 우리를 이끌고 오려 했던 거였다. 정말 안 오고 그냥 갔으면 후회할 뻔 했다. 물론 사진을 정리하고 포스팅하느라 나보다 늦게 자서 잠이 부족했던 g는 새벽부터 물속을 걷는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흐르는 물속에 발을 담궜(궈야 했)다.
얼음장 같이 차갑지는 않았지만 새벽 흐르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 걷는 기분은 묘했다. 그렇잖아도 물을 무서워하는 난데, 이거 오늘 제대로 마치고 라스베가스로 돌아갈 수나 있을까. 그래도 내가 언제 이런 거 해 보겠어,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같은 감정이 뒤섞여 조심조심 발을 내딛으면서도 어느새 셀카질이다. 뭐, 할 만 하더구만.^^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하면서도 가끔 위를 올려다 봤다. 하얀 달이 아직 있고, 해는 막 기지개를 펴려는지 사위가 밝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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