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난감했던 설교(1)
지난 주일엔 오랜만에 설교를 했다.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안수 받은 전문 설교가가
아니면서 교회 공예배에서 설교할 기회를 갖는 건 희귀한 일이다. 가정교회를 하는 우리
교회에선 일 년에 두 번 몇몇 가정교회들이 십여 개의 마을 단위로 흩어져 예배를 드리는데,
양평에 사는 교우들을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에 설교를 부탁 받아 하게 된 것이다.
보통 이럴 땐 대개 18번 설교를 하게 된다. 특별히 어떤 본문이나 주제를 요청하지
않았고, 따로 준비할 시간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땐 어쩔 수 없이 평소 하던 것 가운데
비교적 잘할 수 있는 걸 할 수밖에 없다(세상에! 닷새 전에 부탁 받았다. 십중팔구 이럴 땐
돌고 돌아 내 차례까지 온 걸로 거의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 다음 재빨리 머리를 굴려 몇 개의 레퍼토리 가운데 교회론과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고린도전서 12장을 골랐다. 바울이 교인들을 눈과 발 등 인체기관에
비유해 한 몸과 여러 지체를 강조하면서 일치와 다양성(unity with diversity)을 인식시키는
재밌는 본문이라 강의와 설교할 일이 생기면 종종 살펴보는 익숙한 본문이다.
며칠 간 상황에 맞게 구상을 하고 대략 준비를 마쳤는데, 아뿔사!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커다란 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ACTS 학생회관 3층에 들어서니 올망졸망 열 명은 족히 되는
꼬마들이 앞자리에 쭈루루 앉아 있었다. 보통은 아이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 앞부분 찬양시간까지
함께한 다음 다른 방으로 보내고 어른들만 설교를 듣는데, 영하의 날씨에 난방이 된 곳도
없고, 외부 장소를 빌린지라 그냥 함께 앉혀 끝까지 있게 하는 모양이었다.
음~ 이쯤 되면 앞이 캄캄하고 등에서 식은 땀 흐르는 대략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을 무시하고 어른들을 위해 준비한 설교를 할지, 아니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끌고 가는 모험을 할지를 느헤미야 형님처럼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강행하자니 아이들이 재미없어 하고 지루해 할 건 불을 보듯 뻔하고, 그렇다고 애들하고
놀아주는 데 익숙하지도 않으니 진퇴양난, 이를 어쩌나.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