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churching/House Church

대략 난감했던 설교(2)

iami59 2015. 12. 2. 00:00

평소 잘 안 하던 설교를 부탁 받으면 우선 마음이 분주해진다. 본문과 주제도 잡아야

하고, 인트로를 어떻게 할지, 혼자 떠들지 아니면 청중과 주고 받는 형식으로 할지, 마무리

훅으로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할지 마음이 급해진다. 봐야 할 책도 많이 생기고, 원고(Full script)를

작성해 프린트해서 올라갈지(그렇다고 내내 보면서 읽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 아니면

주요 대지와 구절만 메모해서 진행할지 생각이 뒤엉키면서 가슴이 쿵쿵 뛴다.

 

기본적인 이해는 돼 있고, 원고에 가깝게 정리돼 있긴 해도 톰 라이트(N. T. Wright)의

『모든 사람을 위한 고린도전서』 해당 부분은 두어 번 읽어주어야 하고, 일치와 다양성에

대한 통찰력을 주었던 마이클 그리피스(Michael Griffiths)의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

로버트 뱅크스(Robert Banks)의 『바울의 공동체 사상』, 마르바 던(Marva Dawn)의 『희열의

공동체』 정도는 다시 읽는 게 말하는 나나 듣는 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다행히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의 <메시지 성경>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번역을

해 놔서 앞뒤 본문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주의를 집중시켰다. 눈이 아무리 중요하긴 해도

인체의 모든 기관이 몬스터 주식회사에 나오는 마이클 와조스키처럼 커다란 외눈 투성이라면

곤란하다든지, 대학부 시절과 가정교회 하면서 치고 박고 경험했던 이런저런 이야기 등 소위

예화도 몇 개 준비해 두어야 분위기가 썰렁해지거나 건조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준비를 마쳤는데, 앞줄의 꼬마 청중들이라니,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로 했다. 다행히 꼬마들이 도입 질문 몇 개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었다. 한 녀석이 손을 들고 말하기 시작하니까 다른 애들도 끼어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 번 발동이 걸린 녀석들의 브레이크가 잘 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인트로를 마치고

본론으로 점프하려는데, 신난 녀석들이 계속 재잘거리고, 더 놀아달란다.^^

 

결국 준비한 메시지의 1/5쯤만 꺼내고 말았다. 키워드는 전달된 것 같은데, 그것들을

연결시켜 지지고 볶는 맛은 못 냈다. 불맛까진 아니어도 요리다운 걸 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실내가 추웠는지 불이 약했고, 웍이 말을 안 들었다.^^ 그래도 마치고 난 다음 여러 가족들의

선방했다는,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아내는 가기 전부터 설교 시시해도 좋지만 길게 하진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시간은 잘 지켰다면서 웃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