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하지 않을 자유
교회에서 연말을 앞두고 그 동안(한동안) 안 하던 서약서를 쓰게 했다. 우리 교회는 새신자
과정과 디딤돌이라 불리는 기초 과정 두어 개를 마치면 손님에서 가족이 되는데, 우린 5년 전에
이 과정을 이수해 그 동안 하늘가족 47기로 지내고 있었다. 몇 과정을 더 이수하면 언약가족,
헌신가족 등이 되고, 그 다음에는 가정교회라 불리는 소그룹 리더가 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원래 이런 서약서 쓰는 걸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갑자기 약간 생뚱맞게 서약서를 쓰게 하는 것
같아 얼마간 고민하다가 결국 제출하지 않았다. 뭔가 인구조사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굳이
교회 다니면서 이런 걸 꼭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몇 주 전에
서약서를 받아오면서 그 내용은 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지난주 마감 시한이 지나고나서 살펴보니,
역시 안 하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따라선 뭐 별 거 없네, 교회 다니면서 굳이 안 하는 게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과 재정을 약속하고 다짐하면서 서약서로 제출하는 이런 방식은 선뜻 동의가 잘 안 된다.
크게 봐서 이런 건 양심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신자의 자유를 서약이라는 형식으로 제한하는 건
좀 무리지 않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건 좀 더 결속력과 헌신도가 높은 리더 과정을
통과하기 전에 확인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물론 교회로서도 출석 교우의 7, 80%는 족히 될 가족들을 파악하고 지원하기 위한 행정적
편의나 관리의 효율성을 위해 이런 제도를 재개하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런 서약을 함으로써
내 신앙적 양심에 제약을 받는다면 나는 굳이 불편한 서약보다는 손님으로 강등(?)되더라도 자유를
택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서약서를 내든 안 내든, 내 신앙행위는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