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wandering/동네산책

작업이 끝나고 난 뒤

iami59 2017. 5. 26. 00:00

모락산에 가거나 둘레길을 걷다가 계원대 캠퍼스 정문과 후문 사이로 접어들면 나즈막하고

평평한 공터가 나오는데, 아늑하고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캠퍼스에선 1분이면 걸어올 수 있는

뒷동산이니 끝내주는 명당인데, 공터 한 구석에 미술대학인 이 대학 학생들이나 관계자들이 전시했던

설치 작품들이 놓여 있다. 작품을 만들거나 전시 후 딱히 보관할 장소가 여의치 않았던 모양인데,

작품들도 다양하고 수준도 나름 괜찮아서 가끔 들릴 때마다 멈춰서 훑어보곤 한다.


작품들은 아무렇게나 방치되지 않고 나름 간격을 두고 놓여 있어 어떻게 보면 아예 처음부터

여기가 이 작품들의 야외 전시장이었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다. 오히려 갑갑한 실내 전시장보다는

시원하고 탁 트인 이 곳이 더 잘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산에서 내려오던 유일한 관객이 아무런

긴장감 없이 바라봐서인지 전시장에 있을 때보다 더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 같다.   

    

몇 해째 이 공간에 놓여 있다 보니 철로 만든 작품들은 조금 부식되기도 하고, 다른 작품들도

사시사철 비와 눈 그리고 바람을 그대로 맞아 조금 낡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어떤 작품들은 무슨 의도로 제작된 건지 잘 파악이 안 되기도 하지만, 인상쓰고 보거나 머리를 굴리며

봐야 하는 아주 어려운 추상 작품들은 없어 그야말로 부담없이 구경해 주곤 한다. 자전거 바퀴를 단

가건물 작품엔 안팎으로 낙서가 가득해 관람객들의 반응이 제법 괜찮았던 모양이다.


문득 전시가 끝나고 난 뒤, 작업이 끝나고 난 뒤 해체되거나 망가지지 않고 비록 외진 곳이지만

꿋꿋하게 서 있는 게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활용되거나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어떤 경우엔 그냥 이렇게 뒤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냥 서 있는 것도 나름 괜찮아

보인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지나가는 이들과 잠시 반갑게 조우할 날도 생기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