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i59 2010. 11. 16. 11:08

케이프타운 로잔대회가 중간에 휴식일이 하루 있어 꼭두새벽에 혼자 호텔을 나서 테이블 마운틴까지 걸어가 등정한, 약간 미친 짓을 감행했던 날에 걸었던 주택가 풍경이다. 중산층 이상이 사는 동네로 집이며 차들이 좋은 게 많았다. 
  

이런 고급 주택가의 특징은 공기도 좋고 전망도 좋지만 조경이 잘돼 있는 집과 골목이 많다는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걸어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 놔.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 보기 어려웠다. 

소심한 마음 한편엔 어서 이 주택가를 통과해 산으로 통하는 길을 만나고픈 마음이 굴뚝 같으면서도, 나도 모를 느긋한 기질은 멋진 집들이 선사하는 풍경에 자꾸 걸음을 멈춰 잠시 구경하게 만들었다.
  

멋진 돌담에 앙증맞게 어울리는 나무 세 그루가 시선을 잡아당기고, 주차된 예쁜 차들도 도저히 그냥 지나치게 만들지 않았다. 전에도 한 번 소개했지만, 파스텔톤으로 장식한 이 차는 늘어진 나뭇가지들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오르막이 시작되는 길에서 CUL-DE-SAC이란 도로안내판을 만났다. 쿨데삭, 오잉~ 이건 뭥미? 대략 난감했다. 생긴 걸로 볼 때 영어는 아닌 것 같고, 불어나 화란어 비스무리했다. 뜻? 처음 보는 단어를 알 리가 없잖은가. 때려 잡아보려 머리를 굴려봤지만, 끙끙.

이럴 땐 둘 중 하나를 택할 밖에. 그냥 가든지, 말든지. 가 보기로 했다, 잘못돼도 몇 분 손해보는 셈치고 돌아올 수 있을 만큼 가 보는 것이다. 어랍쇼! 길이 없네. 진행 방향으론 막혀 있고, 돌아오게 돼 있는 길이었다. 막힌 도로란 뜻이었다.

  

이 정도의 무식은 어쩔 수 없는 법. 오르막길이라 10분 정도 더 걸렸지만, 재밌는 경험이었다. 이제 CUL-DE-SAC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가서 겨우 경비원인 듯한 사람을 만나 등산로를 물으니 계속 올라가면 된단다. 제대로 오긴 온 거구나, 하는 안도감에 그 동안의 긴장이 눈녹듯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났다.
   

길가 집 지붕 위로 테이블 마운틴도 보이고, 키 큰 나무 사이로 멀리 라이온 헤드 산도 보인다. 이 정도면 이제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부지런히 차도를 만나 케이블카정류장까지 가서 등산로를 찾으면 됐다.
 

드디어 차들이 다니는 도로로 나왔다. 물론 여기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등산로를 만날 수 있었지만, 비로소 새벽 산행 감행을 후회하지 않고 자축할 수 있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차로 주차장까지 와서 산책하거나 조깅 또는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제부턴 산만 보고 오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