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wandering/百味百想

추억을 소환하는 동아냉면

iami59 2018. 7. 30. 00:00

중고생 시절, 그러니까 70년대 초중반에 광화문에 선다래란 냉면집이 있었다. 당시 막 다니기 시작했던 교회가 근처 내수동에 있어 토요일에 교회 갈 일이 생기면 덩달아 가서 2백원인가 내고(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냉면을 먹곤 했는데, 달콤하면서도 매콤시콤했던 맛이 가끔 생각난다. 결혼하기 전엔 여름이면 집에서도 냉면을 많이 먹었는데, 형수님이 만드신 다대기도 제법 매콤했다. 결혼하고 분가해 살던 잠실 집 근처엔 마침 매운 해주냉면이 있어 자주 갔다.

 

오랜만에 한남동에 갔다가 동아냉면에 들렸다. 본점은 아니고 2호점쯤 되는 덴데, 외관은 전혀 냉면집 같지 않은데 바글바글 줄 서 먹는 집이다. 비냉 대자(7천원)를 시켰는데, 허옇고 신 무채는 셀프로 덜어 오면 된다. 뾰족구두 같이 높은 냉면기 바닥에 1/3 정도 담겨 나왔는데, 비벼 먹기 전까진 얼마나 매운지 잘 가늠이 안 된다. 개봉박두! 

 

냉면집 가면 기본으로 잘라 먹으라고 가위를 주거나 수저통에 있는 집이 많은데, 우리는 생전 쓸 일 없다. 이빨로 끊어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냉면을 가위로 자르다니, 이건 정말 냉면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가오도 안 서는 일이다. 먹기 시작하면 비주얼이 평범한 게 그닥 맵지 않을 거 같은데, 오랜만에 매운 냉면을 우걱우걱 집어넣노라니 사알짝 혀와 위에 매운맛이 느껴진다.

 

진하고 짠 뜨거운 육수를 셀프로 따라와 후후 불어가면서 먹기 전에 한 컵, 먹으면서 한 컵, 먹은 다음에 한 컵 이렇게 마셔 주는 것도 냉면 먹는 재미다. 오랜만에 매콤시콤달콤한 냉면을 먹었더니 입맛과 기분은 좋은데, 위가 놀랐는지 속이 조금 안 좋았다. 사실 동네 시장통에 가도 이런 냉면맛은 쉬 맛볼 수 있는데, 요즘 대세 평냉과는 격이 다르고, 마트에서 사다 끓여 먹는 인스탄트 냉면들과는 유가 다른 그야말로 편하고 종종 생각나는 동네냉면스러운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