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wandering/동네산행
부러진 가지에도 단풍이
iami59
2021. 11. 9. 00:00
남한산성을 동문부터 올라가는데, 가파른 계단을 두세 차례 지나는 길에 부러지고 꺾인 나무가 보였다. 산길에선 흔한 풍경이지만, 이 나무는 부러져 땅에 닿으면서까지 주위의 다른 나무들보다 더 붉은 단풍을 피워내고 있는 게 특이해 보였다.
부러진 지 얼마 안 됐거나, 부러져서도 가을을 붉게 물들이려는 사명감에 충만하군 하면서 가까이 가 보니, 비밀이 숨어 있었다. 부러진 나무 바로 뒤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단풍나무가 피워낸 것으로, 넘어진 큰 나무와 겹쳐 그리 보였던 게다.
사연은 어쨌거나, 단풍은 고개를 들고 올려다만 보다가 내려다 보는 묘미가 있었다. 몇 년 뒤엔 쓰러진 나무를 대체할 정도로 잘 자라 단풍 숲을 이뤄 동문 고갯길을 오르는 이들에게 깊은 가을을 선사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