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raveling/Wow! Grand Canyon

자이언캐년 트레킹4 - 천사들, 어디 계세요?

iami59 2012. 8. 16. 00:00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 국립공원에서 약방의 감초 격으로 자주 그리고 많이 보고 듣는 말은 안전이다. 네 안전은 네 책임이라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문구는 브로셔에서, 안내판에서, 셔틀버스 방송 등에서 수도 없이 접하게 되는데, Angels Landing 같은 험산 중턱 전망대 앞에서 다시 읽는 느낌은 색달랐다. 그렇잖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말이다.

2004년 이후 6명이 이곳 스카우트 전망대에서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험난한 루트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는 사고가 있었구나. 강풍, 소나기, 눈이 내릴 땐 올라가지 않는 게 좋다는 지극히 당연하신 말씀을 적어놨다. 근데, 돌풍과 소나기가 몰아칠 줄 누가 알았냐고?!

우와~ 정말 힘들다. 혼자 등산할 땐 정상에 이르기 전엔 웬만해선 앉지 않고, 쉴 때도 서서 잠시 숨 고르거나 물 한 잔 마시는 게 일인데(뭐, 체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비교적 짧은 코스를 천천히 오르기 때문이다^^), 여긴 앉아야겠다. 암벽이며 작은 바위와 흙색깔마냥 내 얼굴과 팔도 온통 뻘겋게 상기돼 있다. 발 아래는 바로 깎아지른 암벽이다.   

그.리,고, 그.러.다.가, 그.런.데. 예서 예상치 못한 돌풍과 세찬 소나기를 맞았다. 정말 순간적으로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강력한 비바람이 온 산과 우리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피할 데도 없고, 숨을 틈도 없었다. 급히 배낭 레인커버를 씌우고 손에 쥐고 있던 디카를 바지 주머니에 집어 넣고, 그저 바위 위에 쭈그리고 앉아 쫄딱 맞으면서 어서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산 위에서 몰아치는 돌풍과 비의 위력은 대단했다. 5분에서 10분 남짓 꼼짝없이 온 몸이 젖고, 급히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은 카메라에도 흙이 들어가 뻑뻑거릴 정도였다. 이쯤 되면 정상은 포기하고 돌아설 법도 하지만, 비바람이 그치자 뜨거웠던 공기도 식고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뭐든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이다. g도 앞서가는 나를 조금 뒤처져서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 번째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뙤약볕 꼬부랑길, 돌풍과 소나기에 이어 쇠밧줄 바위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아, 이거 인간적으로 너무했다. 그래도 한쪽은 돌벽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양쪽에 아무것도 없어 쇠줄을 잡아야 하는 좁은 바위 경사길이 거의 정상까지 이어졌다. 도대체 어쩌라고! 


결국 g는 정상을 5분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멈춰섰다. 적당한 바위 쯤에서 기다리거나 슬슬 내려가고 있겠다며 다녀오시라고 했다. 혼자서 얼마 안 남은 길을 서둘러 갔다오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떤 천사가 있는지 팀을 대표해서 봐야 했다.^^


만세! 만만세!! 드뎌 Angels Landing 정상에 섰다. 정상부는 생각보다 꽤 넓었다. 먼저 오른 두세 팀, 대여섯 명이 사방 경치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기다리는 g도 궁금하고 해서 오래 머물지 않고 급히 인증샷 몇 장을 남긴 다음 돌아섰다. 


이 산을 오르면서 살짝 기대했던 천사는? 물.론.^^ 거기 없었다. 해서, 정상을 밟고 내려가는 이들은 헥헥거리면서 올라오는 이들을 볼 때마다 한 마디씩 한다. There's no angels! Oh, You are angel!^^


그랬다. 먼 옛날 이 산에 강림했던 천사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다만 그 아우라에 취해 이 산을 계속 찾는 사람들만이 있었던 것이다. 음~ 그러려면 산 이름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Angels Climbing으로!^^


서둘러 하산하기 시작했다. g는 그새 조금 더 올라와 전망 좋은 곳에 앉아 쉬고 있었다. 좋았어요?^^ 여기도 괜찮은데요. 360도 안 보여도 270도는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 뭐 딱히 안 올라가도 그리 서운하지 않은 곳이었어, 이렇게 말해 주었다.^^


하산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올라오면서 익숙해진 지형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시간은 이미 6시가 지나 있는데, 여전히 올라오는 이들을 열 팀은 본 것 같다. 우리처럼 해가 이글거릴 때 올라오는 이들도 있지만, 더위를 피해 아예 저녁 시간에 올라오는 이들도 꽤 됐다. 자이언의 해는 꽤 길어 8시가 넘어야 어둑해지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