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와 은주
Posted 2012. 9. 1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내수동 대학부 시절 후배들인 경자와 은주 그리고 윤아가 월요일 점심 때 집에 왔다 갔다. 주말에 왔다면 나도 얼굴을 볼 수 있었겠지만, 다들 이제 막 50줄에 접어든 주부들인지라 나를 반찬삼아 자기들끼리만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로즈마리는 지난 여름 정선 시장에서 사 온 곤드레밥과 월남쌈을 준비했고, 이 친구들은 나도 좋아하고 자기들도 좋아하는 빵과 과자를 사 오거나 만들어 왔다.
3년 후배 경자는 손이 빠르고 말도 많고 빠른데다가 음식 솜씨가 뛰어나 후배들 가운데 늘 빠지면 안 되는 감초 같은 존재다. 언니와 오라버니를 위해 견과류가 잔뜩 들어간 파이를 구워왔다. 척 보기에도 맛나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맛있는 경자표 파이를 정성스럽게 빵집 비닐 포장해 왔는데, 손도 커서 넉넉히 가져오는 바람에 우리 사무실에도 하나 가져갈 수 있었다.
넷 중에 생년월일이 제일 어리면서도 마치 지가 큰언니라도 되는 줄 아는 경자는 언니네 나들이에 깻잎이며 김이며 들기름까지 가져오는 극성을 부렸다.^^ 알뜰할 땐 칼 같으면서도 쓸 땐 제대로 퍼주는 경자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는 대학부 때부터 익히 알아봤다.
달달한 걸 좋아하는 대구 아가씨 은주는 약사로 일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우리처럼 대학부 커플이다. 수재 중의 수재라 할 수 있는 물리학 교수 건호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데, 지금은 남서울교회에서 부부가 잘 섬기고 있다.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아주 달달한 쵸코케이크를 사 왔다.
경자와 은주는 정말 죽이 잘 맞는 친구인데, 이 둘은 나를 놀리는 재미를 그 시절 이후 30년이 지나도록 여태 못 버리고 있다. 이 둘에게 나는 '서뚱'으로 불리면서 그제나 이제나 즐겁게 씹히고 있는데, 얘네들의 기억력은 정말 못 당할 정도이다.
로즈마리와 같은 학년인 피아노 전공의 윤아 씨는 대학부 중창단의 반주를 했는데, 말이 없고 조용한 친구여서 내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진 않다. 우리 집에 처음 와본 그녀도 자신이 먹고 싶었다던 간식을 사 왔는데, 모양이 특이하고 담아 온 길쭉한 통도 재밌었다.
슈니발렌(Schneeballen)이란 읽기도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과자는 꼭 스노우 볼처럼 생겼는데,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 주 로텐부르크의 전통 과자라고 한다. 과자 반죽을 길게 늘였다가 동그랗게 말아서 깨끗한 기름에 튀겨내는데 겉이 딱딱하기 때문에 뜯어 먹거나, 원목 나무망치로 부셔 먹는 재미도 있다고 한다.
아줌마들의 방문으로 오랜만에 달달한 빵과 케이크들이 저녁 시간을 즐겁게 만들었다. 우리집 커피와 썩 잘 어울리는 맛이다. 그래, 나를 씹어도 좋으니까 자주들 와라. 그리고 다음번에도 맛난 것들 잔뜩 만들어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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