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Posted 2014. 1. 1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수은주를 급강하시켰다. 감춰두었던 겨울 본색을 제대로 드러내기라도 하려는 듯 영하 10도를
넘는 강추위를 몰고오면서 하루 사이에 15도가 넘는 기온차를 보이기에 이르렀다. 깜놀 추위는
하루로 그치지 않고 이틀 연속으로 몰려오면서 다시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들었다.
날이 좋았던 날들은 이런저런 일로 산에 못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교롭게도
이렇게 추운 날엔 아무 약속도 안 잡히면서 거의 고스톱에서 별볼일 없는 패를 받아 죽었다가
연사(連死) 할 수 없어 - 이런 전문용어를 이해하실 분이 얼마나 되시려나^^ - 치게 되는
기분으로 산에 오르게 된다.
몸으로 파고 들어오면서 살을 에는 듯한 추위만 빼곤 겨울산은 멀쩡했다. 한동안 말랑말랑
했던 날씨로 등산로의 눈은 깨끗이 녹았고, 땅속만 얼어 굳어 있는 길은 오르내리기 수월했다.
물론 햇빛이 미치지 않는 경사면이나 계곡 쪽은 여전히 눈에 덮여 있어 꼭 냉온탕을 들락날락
하는 기분이었다.
대체로 견딜만 했지만 바람이 문제였다. 잎을 다 떨군 겨울 나무들은 불어오는 바람을
속절없이 그대로 무사통과시켰고, 언덕배기라도 오를라치면 바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매섭게
몰아치면서 언 몸을 더 움추리게 만들었다. 차갑다 못해 알싸한 느낌에 정신이 버쩍 들면서
빨리 올라갔다가 서둘러 내려와야겠단 생각을 재촉한다.
이런 날은 딱히 찍을 것도 찍힐 것도 없고, 주머니에서 꺼내 찍기도 귀찮아 아무 소득 없이
내려올 때가 많은데, 하산길에 등산로에 비췬 그림자가 문득 그럴듯해 보였다. 키가 커 보였던
것이다.^^ 깃을 세우고 까만색 바바리를 걸친 듯한 그림자는 마치 산을 훌쩍 뛰어다니거나
자유자재로 점프라도 할 수 있는 당당한 위용을 보여주었다.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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