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셰프가 차린 통섭의 식탁
Posted 2014. 2. 20.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며칠 전에 생일을 보냈다. 식구 중 셋의 생일이 몰려 있는 2월에 맞는 생일, 그것도 중간에 끼어 있고, 발렌타인데이와 겹치는데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대보름날과도 겹쳐 늘 그랬듯이 약간 의미 있지만 딱히 특별하지는 않은 일년 중 하루였다
저녁을 먹고 케이크를 자른 다음 아이들의 선물을 받았는데, 조금 특별한 게 있었다. 둘째가 오후에 친구들과 만났는데, 그 중 한 녀석이 우리집에도 자주 오는 둘째의 절친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아빠 생일 얘기가 나왔고, 녀석들이 즉석에서 돈을 걷어 선물로 책을 한 권 사 보낸 것이다. 기특, 대견도 하지, 요즘 이런 녀석들이 있다니!
아마도 친구 아빠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안 녀석들이 서점으로 가서 고른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내 취향과는 많이 달라 다음날 가서 바꿔왔다. 동네 서점이라 바꿀만한 책이 있을지 약간 염려했지만, 초중고 학습서들이 즐비한 가운데서도 그런대로 마음에 드는 책이 눈에 띄었고, 여행서적과 경합하다가 고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Anyway, 생물학자 책벌 최재천 교수는 통섭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자이다. 책벌(冊閥)이란 말과 통섭(concillience)이란 잘 안 쓰고 어려워 보이는 단어 두 개를 일부러 써봤다. 책벌은 재벌, 학벌 같은 데 쓰는 말로 최 교수가 스스로를 부르는 개념인데 발음도 비슷한 책벌레쯤으로 이해하면 되고, 통섭 역시 2005년 그가 처음 옮긴 말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버무린 퓨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대단한 책벌레인 최 교수는 능숙한 셰프가 되어 애피타이저-메인 요리-디저트에 어울리는 책들을 고르고, 그 앞뒤로 셰프 추천 메뉴(Today's Special), 일품요리, 퓨전 요리 몇 가지씩을 곁들인 50여 권의 책으로 자신의 주방을 꾸미고 있다. 당대 일급의 능숙한 셰프가 잘 고른 재료에 맛과 향을 더해 내놓으니 푸짐하고 풍성하며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최 셰프의 미덕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건, 쉽고 군더더기가 없이 간결하면서도 재미 있게 글을 쓸 줄 안다는 것. 나같이 이런 자연과학류 식당에 잘 안 가는 문외한들도 그가 내놓는 요리를 맛보면 좀 더 먹고 싶어지니. 그의 레시피와 손맛은 알아줘야겠다. 취미 독서보다는 기획 독서를 주창하는 그가 차린 통섭의 식당은 내게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즐겨찾기 해놓고 가끔 들러보고 싶은 맛집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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