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나무
Posted 2020. 9. 19.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덕풍골 약수터에서 물을 받고 한 시간 정도 주변을 걷는데, 덕풍터널 옆으로 얼마 전에 새로 지은 아파트들을 가릴 정도로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위로 뻗은 가지들이 보통 나무들과 달라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칡넝쿨이 나무 가지를 칭칭 감으면서 타고 올라간 것이었다. 나무 줄기와 가지만 아니라 주변을 온통 휘덮고 있었는데, 이쯤 되면 이 나무를 칡나무라 불러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
좀 더 다가서니 오른쪽으로 원래의 칡넝쿨이 보였는데, 이 또한 보통의 칡넝쿨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위세와 위용이 대단했다. 그러고 보니 넝쿨 식물들은 혼자서만 자라지 않고 주변의 나무들이나 담벼락 같은 지형지물을 활용해, 실제로는 기생해 자라는 재주가 대단한 것 같다. 가끔 강변북로를 운전하다 보면 가로등을 휘감고 올라가 조명 부위까지 덮고 있는 넝쿨 식물을 볼 수 있는데, 어찌나 빽빽촘촘하게 덮고 있는지 그 자체가 그럴듯한 조형물처럼 보일 정도다.
왼쪽 부분에 새로 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넝쿨 한 줄기가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나무 하나를 온통 휘감으면서 자기 존재도 과시하고 공생을 꾀하는 모양이다. 좀 거창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칡넝쿨로선 거인의 등을 타고 올라서서 더 높고 넓은 세계로 진출하는 셈인데, 타고 올라가는 것도 재주지만, 자신의 존재감이 감춰지고 사라지는 운명을 감수하면서도 새로운 변신에 묵묵히 참여하는 나무가 있지 않았더라면 이런 그림은 나오지 않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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