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힘
Posted 2011. 7. 29.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KOSTA USA
그림이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뭔가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그림에서 기둥 뒤에 서 있는 이는 입은 옷이나 긴 머리로 볼 때 예수님을 그린 것 같은데, 왼쪽에 있는 이들은 청바지와 잘 차려입은 현대인들이다. 성전에서 헌금하는 과부와 부자 장면이 연상된다.
여인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1달러 지폐도 아니고 쿼터나 페니를 내고 있다. 잘 빼입은 청년은 팔짱을 낀 채 매우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째려보고 있다. 그의 시선에선 경멸과 야박함이 피어오르고, 코에선 찬바람이 쌩하니 분다. 예수님은 기둥에 가볍게 손을 대신 채 두 사람의 시종을 지켜보신다.
아래 그림은 군병들에게 잡혀가시는 예수님이 살짝 뒤를 돌아보시는 순간, 베드로로 보이는 청년이 모닥불 앞에서 엉거주춤 외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책하는 것 같기도 한 풍경이다. 짧은 머리에 낡고 물빠진 블루진 셔츠와 그보다 더 낡아보이는 청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은 게 딱 요즘 청년 분위기다. 화가는 그의 손목에 시계를 살짝 그려놓았다.
휘튼대학에 있는 빌리 그래함 센터 미술관에서 론 디치아니(Ron DiCianni)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림이 얼핏 보면 여호와의 증인 소식지에 나오는 종교화 분위기인데, 전에도 이곳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본 기억이 있다. 이 작가의 작품만으로 된 칼렌다도 팔고 있었다.
아래 작품은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고뇌에 찬 예수님을 그렸는데, 구름색이 아주 리얼한 게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좀 더 찍으려 했지만, 직원이 찍지 말라고 제지해 아쉽게도 나머지 작품들은 감상만 해야 했다.
만약 이 작가가 그림 속에 현대인을 등장시키지 않았다면 이렇게 관심있게 감상하진 않았을 것이다. 잘 아는 스토리를 신선한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해서 관람객들에게 어필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화가의 상상력이 흔하고 익숙한 스토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관람객에겐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는 화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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