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이 본 전복과 반전의 순간
Posted 2015. 8. 31.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음악평론가 강헌이 쓴 첫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재밌게 읽었다. 영화, 와인, 음식, 축구, 명리학 등 사방팔방으로 종잡을 수 없게 넘나드는 당대의 구라답게 재즈에서 로큰롤까지, 통기타에서 그룹사운드까지, 모차르트에서 베토벤까지, 사의 찬미에서 목포의 눈물까지 자신이 주목한 각종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을 벙커1(대학로에서 딴지일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종횡무진 풀어 놓은 썰풍 강연을 정리한 책이어서 술술 읽혔다.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책들과는 다른 두 가지 편집 스킬을 선 보이고 있다. 언제부턴가 글줄길이는 뭉툭하게 하고 행간은 졸라 넓게 주면서 한 면당 24행도 많다며 23, 21행씩 널널하게 배열하는 출판사들이 허다한데, 다 종이 낭비하면서 책값만 올리는 얄팍한 농간이다. 돌베개는 오랜만에 뚝심있게 자그마치 31행씩이나 할애하고 있는데, 얼핏 보면 답답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거야말로 독자를 고려하는 충실한 편집이다.
또 다른 묘미는 거의 본문 반 각주 반으로 지면을 구성한 건데, 보통은 이 정도로 각주가 많고 길면 본문을 다 배열한 다음 책 뒤에 미주 형식으로 싣게 마련인데(그래서 웬만하면 안 읽게 만든다^^), 고집스럽게 본문 하단에 아주 작은 글자로 빽빽하게 배열해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허걱~ 소리를 내게 만든다. 옛날 스타일로 각주가 좀 지나치게 많고 잦다 싶은 느낌도 들지만, 자료집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안성맞춤이겠다.
한국과 서양음악의 결정적 순간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입담에 360면에 이르는 책은 챕터별로 앉은자리에서 다 읽게 만드는데, 아직 각주는 다 읽지 못했으니 반만 읽은 셈이다.^^ 깨알 같은 고딕 글자로 2단 배열한 각주는 일종의 백과사전처럼 보여 옆에 두고 심심할 때 몇 개씩 슬슬 읽어볼 참이다. 이 책에서 종횡무진 선보이는 강헌의 현란한 구라는 딴지 라디오가 하는 팟캐스트 벙커1 특강에서 무료로 들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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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가운데서도 김현이라고 시마다 주를 서너 개씩 붙이는 시인이 나타났어요. 어떨 때는 시보다 주가 더 재미나는 기현상이 생기더라구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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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달린 시는 좀 이해가 되고 독자 입장에서 필요하겠다 싶은데, 돌아가신 김현 선생과
동명이인인 시인인가 봅니다. 이 책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질구레한 주를 달고 있는데,
편집자와 저자가 예전의 8, 90년대 문화운동 분위기를 내려고 성실한 욕심을 부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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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하다고는 생각하는데. 나중에는 신경 안쓰고 필요할때만 참고했어요 :) 서태지 각주는 좀 당황스럽기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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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포맷을 고집한 저자와 편집자의 뚝심은 칭찬할만 하죠?
이번에 나온 <명리>도 31행을 고집했더군요.
그래도 이런 무지막지한 편집은 약간 과유불급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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