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칼리그라피
Posted 2016. 6. 22.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
지난주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출판계가 도서전을 주관한 출판협회와 출판인회의로 양분돼 있고,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출판사들이 주축을 이루는 출판인회의 측이 참여하지 않아 출판사 부스들은 별로 볼만한 게 없었다. 자연히 다른 땐 시간도 없고 다리도 아파 잘 안 둘러보던 기획전시 코너까지 보게 됐는데^^, 한글 칼리그라피 전이 눈에 들어왔다.
한글서예, 한글 손글씨와 비슷한 한글 칼리그라피가 몇 해 전부터 유행하면서 폰트로도 개발돼 표지나 광고 문구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필체와 디자인 감각이 결합돼 보기 좋은 것들이 많다. 그런데 자칫 칼리그라피를 남발하거나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유치해 보이기 쉬운데, 그 코너에 걸린 것들 가운데 시선을 확 잡아끌거나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들은 거의 없었다. 도서전이 시들해지면서 기획전도 별볼일 없어진 것 같다.
오히려 1446년 만들어진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 특별전에 걸린 옛날 편지나 문서에 쓴 한글 붓글씨들은 개성도 있거니와 나름대로 디자인 감각도 내포돼 있어 보기 좋았다. 물론 옛것들 가운데 고른 작품들과 요즘 신인 작가들을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뭐랄까 품위와 엄격함에 살짝 해학이 느껴지는 16세기 글씨체와 내공도 부족하고 완성도도 많이 떨어져 보이는 요즘 글씨들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싶었다.
지금부터 백 년 전인 20세기 초반의 한글 글씨체를 사용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는데, 별표 고무란 제품을 선전하는 찌라시에 쓰인 한글 필체는 마치 어렸을 때 판화로 새기던 것과 비슷해 아스라한 추억과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단순한 필체지만, 크기를 약간 조절하고 중간중간 블랙 박스에 흰 글자를 사용한 것만으로도 잘 레이아웃된 페이지라는 걸 보여주었다.
보는 내내 웃음을 머금게 한 1915년판 <조선어 독본>에 실린 교과서체는 안 읽어볼 수 없는 유쾌한 내용이었다(옛날 책은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는 정도는 아시겠죠?^^). 사전에도 나오지만 지금은 잘 안 쓰는 ~올시다 같은 옛 말투의 종결 어미가 사용된 책으로 공부하던 이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킥킥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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