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3 - 담장의 미학
Posted 2011. 8. 21.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이번에 전주 한옥마을을 구경하면서 예상했던 것과 달라 조금 실망했는데, 그런대로 위안이 된 것은 담장 아래를 걸을 때였다. 기와와 돌 그리고 흙을 버무려 이어놓은 나즈막한 담장들은 다소 어수선해 보인 한옥마을을 그나마 정돈해 주었다.
기와의 직선과 곡선을 잘 활용하고, 얼기설기 켜켜이 쌓은 다음 황토로 버무려 마감한 담장은 문자 그대로 고풍스런 풍취를 자아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고, 그 앞에 비스듬히 서서 만져보기도 하고, 담장 안을 한 번 훑어볼 수도 있었다.
기와가 모자랐는지, 아니면 돌이 많아서인지 담장 지붕 밑을 온통 돌과 황토로 장식했다. 이쯤 되면 돌담의 미학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런 건 노련한 감으로 쌓아 나갔을 것 같다. 중간중간 기와로 만든 나무로 멋을 내 상생,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인다. 돌담 아래선 듬성듬성 풀이 자라 컬러 포인트가 되었다.
예전에 우리 살던 동네도 그랬지만, 담과 담 사이, 그러니까 골목길은 원래 이렇게 좁았다. 양팔을 벌리면 손끝이 벽에 닿을 정도가 되고, 이 정도면 출입하고 뛰어다니고 숨어놀기에 하등의 불편이 없었다. 아파트가 생기고, 자동차를 갖게 되면서 이런 작은 골목이 불편해진 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골목이 다반사였다.
붉은 벽돌은 잘못 쌓으면 너무 건조해 보이거나 답답해 보이고, 자칫 졸부집처럼 보이기 쉬운데, 역시 카페들은 센스 있게 살짝 변화를 주어 시선을 분산시켜 놓았다. 작은 화분을 모아놓거나 담쟁이 이파리들로 컬러와 포인트에서 확연한 대비를 이루면서 심심하지 않으면서 정감 넘치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길은 맷돌길로 이름붙여 봤다. 믹서가 나오면서 사라진 맷돌은 쌓아두거나 여기저기 늘어놓아도 멋스럽지만, 이렇게 땅을 파서 길을 만드니 한 눈에 들어와 더 반가웠다. 보통은 간격을 벌려 일렬로 놓는데, 이 집은 특이하게 한 데 모아 놓았다. 비가 와도 이 길은 까치발을 짚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둠이 몰려오면서 거리는 일순 조용해지고, 담과 길을 묻어버린다. 전주는 한지와 염색으로 유명한데,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예쁜 문양이 새겨진 천으로 만든 발로 유리창을 살짝 가려놓았다. 씨쓰루는 아니지만, 안에 있는 물건들이 대충 보여 날이 밝으면 무엇을 파는지 와 보고 싶게 만든다.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카페와 앞뒤 한집이다.
오후에 길을 걸으면서 길가에 크기가 다른 동그란 돌이 몇 개씩 군데군데 놓여 있어 궁금했는데, 밤이 되니 불이 들어오면서 그 자체로도 빛났지만 한옥 담장들을 은은하게 비춰주었다. 높이 세운 밝은 가로등만큼 환하진 않았지만, 은근한 조명이 한옥마을과 제법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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