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와 불닭
Posted 2011. 9. 19. 07:36,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요즘은 어딜 가나 오리가 대세다. 전에도 많이 먹긴 했지만, 오리고기집들은 웬만하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탕이나 생고기나 주물럭이나 훈제, 진흙구이 등 먹는 법도 다양하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미사리 끝자락 온누리나 추석 다음날 간 처갓집 일산 풍동의 가나안 덕 같은 데는 웬 손님이 그리 많은지 돈을 푸댓자루로 쓸어 모으는 것 같았다.
꼭 고깃집엘 가야만 오리를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 대형마트들은 집에서 간단하게 즐길 수 있도록 훈제오리를 포장해 판다. 덕분에 코스트코나 이마트에 들릴 때 한두 봉지씩 사 놓았다가 입이 허전할 때 프라이팬에 살짝 구어 이런저런 야채와 함께 먹으면 괜찮은 한끼 거리가 된다.
우리집에선 숙주나물과 시금치에 버섯을 살짝 볶아 굴쏘스로 마무리해 나오는데, 그냥 먹어도 되고, 쌈싸 먹어도 잘 어울리는 맛이라 식구들 모두 좋아한다. 오리는 쌈무의 달큰새콤한 맛과도 잘 어울리는데, 가나안 덕에선 쌈무에 양배추를 함께 절여 내 여러 번 갖다 먹게 한다.
토요일 오후 율리고갯길로 예빈산 직녀봉을 갔다 왔다. 중간쯤 되는 율리고개에 앉아 한 시간 남짓 얇은 책 한 권을 읽고 직녀봉까지 호젓한 등산길을 오르내리는 재미가 있었다. 저녁은 동네에 새로 생긴 치킨집을 찾았는데, 건너편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검단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오며가며 찾고 있었다.
이 집은 시킨 메뉴를 긴 철판에 내오는데, 우린 불닭을 시켰다. 그런데 한 판 가득 불닭이 아니라 불닭, 치킨, 포테이토, 간단 샐러드가 한 움쿰씩 나왔다. 불닭 한 점을 집어먹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매운 맛이 9점 만점에 3점쯤 됐다.
한국 사람치고 매운 맛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어 나도 어느 정도는 매운 걸 좋아하는데, 얼얼하고 살짝 감칠맛나는 요 정도의 매운맛이 딱 좋은 것 같다. 이것만 먹다간 맛을 잃어 버릴지 몰라 다른 것과 함께 나오는 것 같았다. 얼얼한 맛이 쉽게 가시질 않아 옆에 있는 공판장에서 얼른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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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점 만점에 3점이면 맛이 매운 건지 아닌지 헷갈립니다.
문맥으로 봐선 매운 듯한데 점수로 봐선 별로 매운 것 같지를 않고..
보통 10점 만점으로 하는데 9점을 만점으로 하시니 그것도 독특합니다.
맛이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것이라서 9점으로 하신 듯도 하고..
또 맛이란게 취향이라서 1점은 개인 취향으로 남겨두고 9점으로 하신 듯도 하고..
점수의 비밀이 궁금한 아침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인도 카레의 매운맛을 이야기할 때 1부터 9까지 주던 기억이 나서요.
3이면 제법 매운 편인데, 그런대로 견딜만한(몇 번 더 집어 먹고 싶은) 맛인 셈이죠.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한 정도라고 보시면 될듯 싶습니다.
입에 들어갈 땐 잘 모르는데, 뒷맛이 매운 그런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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