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현수막

점심 산책길 출발 지점 아파트 단지 옆 동네공원 녹색 철조망에 가끔 공연 현수막이 걸린다.
A급 공연은 아니고, 인근 안양이나 그 일대에서 열리는 B급 공연들이다. 작년 봄가을엔 개그와
가요 공연을 알리는 작은 현수막이 걸렸는데, 요즘의 대세 김준현과 송해 선생이 출연하거나
이끄는 공연이었다.

개콘에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유치원생 복장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켁켁거리며
안스럽게 숨가쁜 대사를 외워 대던 이 개그맨은 그야말로 요즘 상종가를 날리는 귀하신 몸이
됐다. 120kg는 족히 돼 보이는 뚱땡이와는 전혀 안 어울려 보이는 재기 넘치는 대사를 특유의
표정 연기와 함께 쏟아낼 때 청중은 포복절도, 기절하기 직전까지 갔다 온다. 그의 단독
공연은 아니겠지만, 그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관객을 끌어들였을 것이다.

80대 중반의 송해 선생의 분전 또한 감동적인데, 도대체 이 양반의 전성기는 늘 요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요즘 세대들에겐 익숙한 이름이 아닌
구봉서, 배삼룡 등에게 가려 늘 No. 3나 4 정도의 조연, 조역에 그쳤던 선생은 전국노래자랑이란
그만의 프로를 수십 년간 지켜오면서 말년이 좋은 어른으로 요즘 세대들에게도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의 버라이어티 빅쇼를 또 다른 말쟁이 이상벽이 사회를 본다는 경로잔치급
공연은 안 봐도 성황리에 끝났을 것이다.     

공연 현수막 사진을 고르다가 작년 늦가을 웰링턴 거리를 걷다가 봐둔 보이스 투맨(Boys II
Men)의 20주년 기념 공연 생각이 났다. 이들의 콘서트 투어는 북섬의 3대 도시라 할 수 있는
웰링턴, 오클랜드, 해밀턴에서 각각 일정이 잡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이들의 목소리가 자주 FM에 나오던 때가 있었는데, 풍성한 화음과
아카펠라로 유명한 이들의 빅 넘버로는 <End of the Road> <I'll Make Love to You> 등이
꼽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It's So Hard to Say Good Bye to Yesterday>. 그런데
이 친구들 4인조였던 것 같은데, 한 명이 빠졌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