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느라 수고 많았다
Posted 2013. 12. 29.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Joy of Discovery우리에겐 아직 별로 익숙하지 않은 할로윈이지만 몇몇 대학가에서는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이벤트도 하는 모양이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은 생각보다 밝았고, 발랄하기도 하고 유쾌한
구석이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앞면의 그림만 살펴보다가 돌아섰을 텐데, 이날은 웬지 뒷면엔 뭐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양쪽으로 걷게 돼 있어 뒷쪽엔 또 어떤 그림이나 광고가 붙어 있나
봤더니, 오랜만에 보는 방식인, 종이에 글자를 쓰고 오려낸 다음 스프레이를 뿌린 세 줄로
된 문장 하나가 새겨 있었다.
오늘도 예술가인 척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울림이 있는 문구였다.
뭐랄까,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 간에 이상이나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학습과 수련 과정의
고단함과 동병상련을 위로하는 자조적인 표현 같기도 하고, 교수나 현실의 기준과 시대적
흐름에 억지로 자신을 껴맞추어야 하는 답답하고 고루한 현실을 비웃는 표현 같기도 했다.
동시에 이 문구를 보면서 일종의 해학과 유머도 느껴졌다. 어떤 친구들이 이걸 써 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의식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괜찮은 예술가로 자라갈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예술도 냉정한 현실 인식과 더불어 발랄한 상상과 전복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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