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 요세미티
Posted 2014. 7. 17.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Wild Yosemite보통 내가 산에 갈 때 매는 배낭은 25-30리터 크기의 Day Hiker용인데, 며칠 간 산에서 먹고 자는 데 필요한 모든 걸 짊어지고 가야 하는 요세미티 백패킹(Backpacking)은 60리터 크기의 대형 배낭을 매야 했다. 침낭과 깔판, 텐트가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Shiker님과 토니가 2인용 텐트 두 개를 각각 짊어지고 초보인 내겐 내가 쓸 침낭과 깔판만 매고 가게 했는데도 Shiker님이 지인에게 빌린 도이터(deuter) 60리터 배낭은 묵직했다.
해외여행 가면서 캐리어에 짐을 넣은 다음 제한 중량을 초과하지 않으려 저울에 달아보며 빼거나 다시 싸듯이, 백패커들을 위한 사무실 앞엔 배낭 무게를 체크해 보도록 구형 벽걸이 저울이 달려 있었다. 우린 일일이 달아보진 않았지만, 15kg 정도의 배낭 무게를 사흘간 어깨와 골반 위로 견뎌내야 했다.
백패커들에게 날씨만큼 소중한 정보가 또 있을까. 요세미티 산행 출발 지점인 밸리(Valley)의 인포메이션 센터와 캠핑 안내소 앞엔 그날 그날의 예상 일기와 최고/최저 온도, 특히 천둥 번개 확률이 예고돼 있었다. 화씨 96도는 섭씨 36도 정도. 산에선 오전에 멀쩡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급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우리도 화요일 오후 하프돔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직원(Ranger)의 제지 권유를 받고 다음날 새벽으로 미뤄야 했다.
요세미티 같은 야생(Wilderness) 환경에선 생존을 위한 필수 상비품을 구비하고 다녀야 하는데, 10개의 필수불가결 품목이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설명돼 있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도, 충분한 물, 선글라스, 응급약품, 만능 칼 등과 함께 자기가 사용한 쓰레기를 담아 올 쓰레기봉투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런 치열한 노력과 자발적인 협조가 요세미티를 깨끗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등산로나 캠핑장 입구엔 요세미티 야생 세계가 시작된다면서 블랙 곰, 번개 등으로부터 안전한 여행을 추구하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낮 시간대는 괜찮은데,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되면 음식 냄새를 맡고 텐트 가까이 출현하는 곰의 피해를 봤다는 이야기는 너무 흔한 일상사가 됐을 정도다.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서부영화를 찍으면 딱 좋을 만한 곳이 요세미티였다. 험준한 바위산, 깎아지른듯한 봉우리는 기본이고, 키 큰 세콰이어 나무들이 부러지고 넘어진 채로 그대로 풍경을 이루는 데가 요세미티였다.
백패킹 할 땐 마실 물과 조리할 물을 확보하는 게 최대 관건인데, 올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찾아볼 수 없던 가뭄이 계속되던 터라 캠프장에 물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계곡물이나 시냇물을 휴대용 정수 펌프로 걸러내 식수를 확보하는 게 하루에 몇 번씩 거듭됐다. 화력 좋은 소형 버너에 코펠을 얹고 물을 끓여 비닐 봉지 안에 붓고 10분 정도 지나면 밥이 되는 산악용 즉석밥을 사 갔는데, 유용하게 쓰였다.
Shiker님이 준비한 게토레이 분말을 물병에 타서 마셨으며, 토니가 가져온 쭈욱 짜 먹는 부스터도 힘이 떨어지고 지칠 때 요긴하게 쓰였다. 에너지바와 육포는 좋은 간식거리가 됐고, 저녁 때 한 번 먹은 신라면은 미국에서 파는 거라 여기서 먹는 것과는 맛이 조금 다르긴 했어도 산중라면은 그 어느 화려한 디너에 뒤지지 않았다. 한두 번 마신 커피맛도 잊을 수 없다.
2인용 텐트 안은 좁았지만 아늑했고, 레인 커버를 안 치고 잔 날 새벽에 본 숲속 하늘은 나무 거인들의 놀이터였다. 사실 텐트에서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일은 익숙하지 않아 몸을 뒤척일 때도 많았지만, 노곤한 몸은 어느 새 잠속으로 우리를 불러들였다. 아침에 일어나 서로가 코를 곯았다며 놀리는 것도 백패커들만의 특권이었다.
토니가 갖고 다니는 백패커들을 위한 가이드북인데, 단순한 제목과 사실적인 표지에서 벌써 분위기가 느껴진다. 3박4일간 요세미티의 한 부분을 걸었을 뿐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산 봉우리, 초원, 폭포, 강, 숲길이 반겨주었길래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다녀올 수 있었다. 몰랐는데, 나 은근 백패킹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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