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전도법
Posted 2015. 5. 3. 00:00, Filed under: I'm churching/더불어 함께
화요일 점심산책을 위해 나섰는데, 아파트 단지 지나 등산로 초입 계단 한켠에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컬러풀하고 반듯한 게 버리거나 바람에 날려 온 건 아니고,
누군가 일부러 그 자리에 사뿐히 갖다 놓은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란 타이틀을 지닌 전도지였다.
종종 이 자리에 여호와의 증인 전도 브로셔와 소책자들이 놓이곤 해서 그네들이
놓은 건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인근 평촌에 있는 큰 교회 교인들이 갖다 놓은 거였다.
흥미롭게도 지금 막 사무실을 나와 발걸음을 산으로 옮기고 있는 나를 비롯해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 던지는 맥락 있는 질문이라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전도는 해야겠는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말을 받아 주진 않고, 그냥 전도지
나눠주는 건 별 효과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나름대로 묘안을 짜낸 것 같았다.
이 계단을 오르려는 이들의 동선(動線)을 맞춰 절묘하게 시선(視線)까지 맞추려는
스마트 전도법이었다. 물론 내 생각이고, 못 보거나 봐도 무시하고 가는 이들이
태반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집어서 읽어본 이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런대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으로 시선은 끌었지만, 내용도 그럴진 미지수다. 진지하게 읽어주는 이들보다는
너나 잘하라며 구겨 던지는 이들의 우세가 예상되는 현실이다. 내용도 뻔하지 않고
조금 설득력 있게 만들면 좋을 텐데, 대부분 생소하고 기분 나쁘게 보이는 성경구절
몇 개 나열해 안 믿는 이들이 읽어가기엔 불편하고 불친절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얼마나 있을진 몰라도, 원래 전도란 게 거두는 것보단 일단 뿌리는 데
의의가 있는 거니까 나름대로 기발한 방식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바람에 날려
엉뚱한 데로 굴러다녀 누군가에게 읽히는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이 안 일어나야
할 텐데,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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