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로 530
Posted 2015. 12. 2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영화, 전시회 풍경지난 가을 계원대 캠퍼스 운동장 옆 잔디밭에 이상한 타워 하나가 생겼다. 문화제를
앞둔 학생들의 설치 작품이었는데, 경량 파이프로 공사장의 비계목을 설치한 다음 웬만한
시골 동네마다 쉽게 볼 수 있는 가게들의 간판을 한데 모아 가로세로로 층층이 진열해 놓고,
아래에는 이들을 비출 조명 기구도 띄엄띄엄 설치해 놓았다.
옆에 세워 놓은 작업 설명서를 읽어보니, 이 학교 학생 16명이 강화도의 작은 이면도로에
있는 가게들의 간판을 새로 디자인해 아지테이션 타워(agitation tower)를 만든 <커뮤니티
디자인 회로 530> 프로젝트였다. 쌀집, 정육점, 얼음집, 슈퍼와 다방, 주점, 이발소, 미용실에
옷 수선집, 문방구, 신문 보급소, 서예원 등 동네 가게들이 망라돼 있었는데, 이렇게 타워로
만듦으로써 그저 스쳐 지나다니는 거리를 머물고 싶은 거리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를 포함해 지나다니는 이들의 시선을 끌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으니,
이들의 프로젝트는 일단 첫걸음을 잘 뗀 셈인데, 어스름 불이 들어오는 밤시간에 걸으면
진짜 동네 어귀를 걷는 느낌이 생길 것 같았다. 처음엔 회로를 주위를 빙빙 도는 回路로
생각했는데, 배회(徘徊)에 쓰인 어정거리거나 노닌다는 뜻을 지닌 다른 한자를 쓴 걸로
봐서 다른 의미인가 보다. 아마도 숫자 530은 그 일대의 번짓수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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