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텃밭
Posted 2017. 1. 1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봄에 씨를 뿌리고 싹이 나서 여름 가을 입과 눈을 즐겁게 만들던 등산로 텃밭은 늦가을
배추를 끝으로 한겨울이 되면서 쓸쓸하기 그지 없다. 완전히 뽑히지 않고 내버려둔 것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가 시들어 말라 조금 보기 안스러운데, 눈이라도 와서 소복하게 덮어주면
좋으련만 올겨울엔 해를 넘기도록 눈다운 눈도 안 내려 황량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다 죽고 아무 것도 안 남은 황무지가 아니었다. 대파도 두어 가닥
남아 있고, 상추도 잔챙이들이 살아 있고, 괭이밥을 비롯한 잡풀들이 구석진 자리에 모여
겨울을 나고 있었다. 이 밭의 주인은 나이가 조금 있는 분인 걸로 알고 있는데, 겨울철에
나올 리는 만무이고,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데도 지들끼리 겨울을 나고 있었다.
그나마 올 겨울은 한파가 몰아치지 않았기에 이런 그림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땅이
얼지 않고 볕이 좋은데다 소량이지만 가끔 비까지 내려주니 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한창 때의 아름다움이나 싱싱한 건강미는 아니지만, 꿋꿋이 자리를 지키면서 봄날을 기다리는
이 작고 볼품없는 텃밭을 바라보노라니, 산으로 향하는 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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