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단로 Champ Coffee
Posted 2018. 8. 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한남동에 새로 생긴 책방 스틸 북스(Still Books) 구경을 마치고 냉면 먹고 돌아올 땐 큰 길 대신 골목길에 접어들었는데, 열돔 더위와 피곤함을 잠시 식힐 겸 독특한 라떼 커피로 유명하다는 챔프 커피를 찾았다. 보광동-한남동-이태원동 삼각 지점 쯤에 있는 이 오래된 동네를 요즘은 우사단로라 부르는데, 작지만 개성 있는 가게들에서 인터내셔널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넓고 깔끔한 요즘 웬만한 카페들과는 달리 좁고 다소 어수선한 작은 공간이지만, 치렁치렁 붙여 놓고 다닥다닥 쌓아 놓은 물건들에서 독특한 개성과 고집이 느껴졌다. 번듯한 테이블도 없고, 손님 몇 팀이 오면 어깨를 맞대고 앉아야 하는 아늑한 사랑방 같았는데, 커피맛도 있겠지만 가게 특유의 분위기와 아우라가 손님들을 불러 모을 것 같았다.
손님들이 그린 주인장 캐리커처가 얼추 십여 장은 넘어 보이게 벽에 붙어 있었는데, 이쯤 되면 이 집 주인의 개성과 카리스마가 짐작된다. 근처에 제일기획이란 큰 광고사가 있기도 하지만, 이 집에 들린 손님들에게 주인장은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어 보였다. 옛날 술집들이 그림이나 글씨를 써 준 예술가들에게 공짜나 외상을 허용한 것처럼, 그림을 그려준 고객들에겐 커피 한 잔 정성스레 내려주었을 것만 같다.
다른쪽 벽엔 사장님의 지령이 붙어 있었다. 죄다 자신을 심심하게 하지 말라는, 요즘 카페 고객들에겐 따르기 어려운 명령이었지만, 이 가게의 짱은 주인장이므로 안 들어줄 수 없는 유쾌한 하달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거의 쉬지 않고 질문을 던졌고, 주인장은 느릿느릿 도란도란 커피집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재밌는 게 하나 더 있었는데, 화이트보드에 이름과 숫자가 다닥다닥 써 있었다. 단골들의 외상 리스트냐 물었더니 뜻밖에도 선금 내고 깐 다음 남은 금액이란다. 손님이 직접 쓰기도 하고 주인장이 하기도 한다는데, 얼추 백 명 가까이 돼 보이는 게 이 집의 자부심에 자랑에 가오인 것 같았다. 액수도 만만찮았는데, 10만원 내고 줄줄이 까는 단골도 여럿 있어 보였다.
이 집을 소개한 g는 시그니처 커피 챔프 라떼(4천5백원, 오른쪽)를, 나는 시럽이 추가된 퀸즈 라떼(5천5백원)를 시켰는데, 독특한 향이 나는 시럽맛이 괜찮았다. 소탈한 가게 분위기, 주인장과의 도란도란 대화, 독특한 맛을 낸 커피가 한데 어울려 30여분 뙤약볕 언덕길을 걸어 온 수고를 보상해 주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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