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Posted 2024. 12. 10.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
가끔 새벽 너댓시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곤 한다. 주로 스포츠 채널들을 보다가 가끔 바둑 중계를 볼 때도 있는데, 한중전이 제법 흥미롭게 전개됐다. 중화TV란 데서 새벽에 송출하는 걸 보니 최신 대국은 아니고 3-4년 전 건데, 잘 두지는 못하지만 대충 돌아가는 판세가 읽혀졌다.
두 대국자의 표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백은 조금 여유 있어 보이고, 흑이 밀리는 형국이었다. 바둑 고수들이 판을 못 읽을 리 없는데, 흑은 돌을 던지지 않고 계가까지 가서 덤으로 진 것 같았다. 포기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실수를 노렸던 건지, 아니면 다음 대국을 위한 공부로 끝까지 던지지 않은 건지 그 속내까진 알 수 없다.
문득 이 바둑이 요즘 우리나라 정국과 비슷한 면이 있어 보였다. 자신만만하게 선공을 취하던 흑이 어느 순간 수를 잘못 읽거나 길을 잃어 패배 국면에 몰렸는데, 인정하긴(그네들 표현으론 헌납하긴) 싫어 한 방 또는 묘수를 기대하고 끝까지 버티면서 용을 쓰는 형국이다. 지루한 끝내기 국면이 지나면 결국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가지일 텐데, 어쨌든 뭐라도 해 보려는 모양이다.
'I'm wandering >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인의 품위와 가오 (1) | 2024.12.14 |
---|---|
마후라 교체 (0) | 2024.12.12 |
5호선과 9호선 (0) | 2024.11.30 |
NFL 빅게임 (0) | 2024.11.23 |
호박 선물 (0) | 202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