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매단 소원
Posted 2013. 4. 6.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영월 모운동 산꼬라데이길 입구에 작은 쉼터가 있는데, 신선수라도 되는 듯 키 큰 나무 주위로 소원 적은 작은 나누팻말들이 옹기종기 달려 있다. 누군가가 얇은 나무조각을 작게 잘라 놓고 유성펜까지 마련해 두어 지나가는 이들이 벤치에 앉아 소원이나 언약 등을 적어서 매달아 놓게 했고, 그것들이 한데 어울려 색다른 풍경을 연출해 낸다.
가만히 보니 다른 곳과는 달리 여긴 아예 버팀목을 세운 다음 못으로 나무조각을 박아 놓게 했는데, 벌써 나무 앞뒤 좌우로 대여섯 줄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키가 높아져 나무를 가릴지, 아니면 다 채운 다음엔 리본 같은 걸 매달아 놓게 할지 몇 년 뒤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대개 누구 누구 왔다 갔다부터, 누구와 누구의 사랑은 영원하다든지 하는 젊은 연인들의 소원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간혹 설교조의 말도 눈에 띈다. 명언명구나 성경 구절을 그대로 옮겨쓴 것들도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기독교인 티를 팍팍 내는 문구. 그것도 부드러운 청원과 간절한 권유조의 경어체가 아니라, 오만한 명령과 불손한 훈계조의 옛날 번역 그대로를 옮긴 것이어서 같은 교인이 보기에도 조금 뭐하다.
내용을 떠나 형식에서부터 열혈 기독교인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 간절하고 급한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함께 사는 세상에서 예의와 매너부터 지켜주면 좋겠다. 문득 걸음을 멈춰선 누군가에게 소위 역사가 일어나 믿게 되는 이가 생길지 모르지만, 모르긴 해도 십중팔구 너(희)나 잘하라는 볼멘 소릴 듣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도에도 간절함과 열정 못지 않게 지혜와 매너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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