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꽃꽃
Posted 2013. 5. 19.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양평 물소리길을 걷다가 두 번째 산길을 내려오니 한적한 마을 한 귀퉁이 전신주 옆에 커다란 회색 수거함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무 표시 없이 그냥 서 있기만 하면 어디에 쓰는 건지 모를까봐 글자를 새겨놨는데, 윗 줄엔 헌가커담신, 아랫줄엔 옷방텐요발이라고 뜻모를 글자를 파란 물감으로 인쇄하듯 새겼다.
타박타박 시골길을 로즈마리와 두 시간 넘게 걷노라니 약간 지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핀잔 먹을 각오하고 웃자고 가로로 읽은 거지만, 세로로 읽으면 금세 말이 된다. 헌옷, 가방, 커텐, 담요, 신발을 여기에 넣어주면 수거해서 재활용하거나 수선, 세탁해 수출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조금 더 가서 1코스 종착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도로변 작은 굴다리 위에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산들꽃꽃이 도장 찍은 것처럼 걸려 있었다. 눈에 확 띄는 컬러에 눈에 잘 들어오는 폰트에 가로로 산들꽃꽃으로 읽어도 말이 되고, 세로로 산꽃 들꽃으로 읽어도 자연스러운 내용이라 보는 내내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 옆에 꽃집이 있는 건지, 아니면 농장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산들꽃꽃이란 말이 주는 싱그러움이랄까 강렬한 인상에 잠시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고서도 얼마간 그 단어들이 입가와 뇌리에 떠오르고 맴돌았다. 모름지기 광고나 간판은 이렇게 쉽고 짧을수록 눈에 잘 들어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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