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도 자존심만은
Posted 2013. 5. 2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5월 하순이 되면서 이제 산은 녹색 일색이다. 군데군데 남아 있긴 하지만 산을 물들였던 봄꽃들이 거진 지고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들 천지가 됐다. 슬슬 더워지려는 기색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마에 땀을 송글송글 맺게 하는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요즘 같은 때가 연중 산을 찾기 좋을 때다.
꽃 구경 만큼은 아니어도 나무 구경도 제법 할 만 한데, 그 중에서도 쓰러진 나무들이 우선 눈에 띈다. 웬만한 바람에는 꿈쩍도 안 하던 나무들이 몇 해 전 태풍이 격하게 몰아쳤을 때, 그만 견디지 못하고 휘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꺾인 흔적들을 어느 산에서나 솔찬히 볼 수 있다.
위로 자라던 나무들은 넘어지면서도 자존심을 남기려는지, 나름 강렬한 포즈를 취하고들 있다. 45도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기도 하고, 축구 골대 모양을 흉내내기도 하고, 어떤 건 마치 육중한 바리케이트라도 되는 양 등산로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기도 한다. 통행에 너무 방해가 되면 아예 옆으로 치워놓지만, 다행히 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은 높이로 쓰러진 나무는 그대로 놓여 오가는 이들의 인사를 받는다.
쓰러진 나무들 가운데 압권은 아치형으로 휜 나무다. 하늘을 향해 길고 높게 쭉쭉 뻗어 나갔어야 했을 이 나무는 재밌게도 옆으로 휘어 자라고 있다. 아직 뿌리가 뽑힌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 아치 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노라면 금방이라도 용수철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튀어오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때로는 위로 솟아올라 철봉을 갖고 노는 체조 선수 같은 내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는데, 그건 너무 심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