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길
Posted 2013. 6. 27.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물소리길을 걷다 보면 제법 긴 터널을 지나게 된다. 1코스에도 있고, 2코스에도 있다. 예전엔 시골 기차가 다녔을 것 같은데, 지금은 자전거 도로가 돼 있다. 황색선을 사이에 두고 양방향을 표시하고, 보행자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은 옆으로 따로 선을 그려 표시한다. 아빠와 손 잡고 걷는 딸아이 아이콘이다. 물론 자전거가 안 다닐 땐 자전거길을 걸어도 된다.
2코스의 기곡 터널도 5백 미터쯤 되는 제법 긴 터널인지라 직선 구간과 곡선 구간을 지나게 된다, 아무래도 진출입 구간은 직선으로, 중간은 곡선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얼핏 드는 생각엔 난공사였을 터널공사를 그냥 일직선으로 했으면 좀 더 편했을 것 같지만, 그랬다간 엉뚱한 지점을 통과해 엉뚱한 곳과 연결됐을 것이다. 사방이 오픈된 야외를 걷다가 터널에 접어들면 여러 가지가 바뀐다.
일단 양옆과 위가 막혀 있어 바로 전까지 느꼈던 자유가 제한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눈에 보이는 컬러도 Full HD에서 흑백 해상도로 뚝 떨어진다. 대체로 답답하고 약간의 공포감도 밀려들 수 있다. 주위를 경계하면서 걸음이 느려지기 십상이다. 시각보다는 청각과 후각 또는 촉각 같은 평소 조금 덜 사용하던 다른 느낌이 좀 더 활발해지면서 작은 소리에도 온통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잘 놀라게 된다는 말이다.
터널 안은 바깥과는 달리 시원하고 조용한 편이다. 얼마 안 지나 몸이 익숙해지면서 차분해지고 단순한 느낌이 든다. 아늑한 느낌에 꽤 걸어 묵직했던 다리도 모처럼 휴식하는 기분이다. 중간중간 뒷쪽에서나 반대편에서 자전거가 지나다니는 것도 심심치 않아 좋다. 고맙게도 거의 백 미터 간격으로 벽에 터널의 지나온 거리와 남은 거리가 표시돼 있다.
터널길을 걷는 가장 큰 즐거움은 뭐니뭐니 해도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터널이 조금만 더 가면 탁 트여 환한 바깥길이 나올 게 기대된다는 것일 게다. 아무리 터널길이 고즈넉하고 안온한 느낌마저 선사한다 하더라도 예서 너무 머물러 있거나 오래 지낼 순 없는 법이다. 살다 보면 종종 만나는 터널길도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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