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의 산고
Posted 2015. 4. 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고개숙여 땅 보고 걷는 게 습관이 돼 아내와 딸의 놀림을
받고 흉내를 유발하곤 하는데, 산에서야 오죽하랴. 아마 보통 두세 시간 등하산길에
못해도 2/3, 아니 거의 90%는 땅을 보고 걷는 것 같다.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
힘들기도 하지만, 특별한 거 없어도 그냥 아래를 보고 걷는 게 시나브로 몸에 뱄다.
요즘은 토요일 오전에 아내와 은고개 엄미리 계곡길로 남한산성 벌봉 가는 길을
다니는데, 다른 때처럼 무심코 걷는 내게, 저기 도토리가 싹을 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산 저 산에서 도토리가 굴러다니는 건 수도 없이 봤지만,
이렇게 싹을 내는 건 처음 봤는데, 한 번 눈에 띄자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보였다.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던 도토리가 낙엽들 사이 적당히 자리 잡은 곳에서 단단하고
매끄러운 껍질이 갈라지면서 속에 있던 씨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는 것 같은데,
흙속에서 밖으로 터져나오는 다른 식물들과는 달리 흙속을 찾아 싹을 내는 게 신기했다.
그 무게를 지탱하기가 만만치 않은지 거의 90도 기울여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흙속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다음엔 거추장스러웠던 껍질을 완전히 벗어제끼고
빠알간 도토리 열매만 남아 대롱대롱 달려 있는데, 깊은 숲속이라면 모를까 지나는
바람이 건드리고, 등산객들이 밟고, 그리고 도토리 좋아하는 다람쥐나 청솔모에
자칫 먹히지 않고 잘 견뎌내야 할 텐데, 부디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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