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스티카의 "십자가 현장"(The Crucifixion)
Posted 2010. 7. 25. 00:14, Filed under: I'm traveling/KOSTA USA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직전의 정경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한 이 그림은 폭이 60미터에 높이가 14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이다(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그림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하진 않다). 3년 전에 LA에 갔을 때, 지금은 서울의 한 교회에서 담임으로 있는 대학 시절 후배집에 며칠 머문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좋은 곳이 있다면서 안내한 곳이 바로 이 묘원이었다. 아침부터 묘지를 간다고 해서 의아해 하고 약간 으시시하기도 했지만, 우리네와는 달리 완전히 공원 그 자체였다.
후배는 강당에 좋은 그림이 있다며 어두컴컴한 곳으로 안내했는데, 토요일 아침에 수백 명이 들어갈 만한 극장 같은 곳에 손님이라곤 달랑 우리 둘밖에 없어 긴장했는데, 잠시 후 양쪽 무대의 커튼이 서서히 걷히면서 현존하는 세상 최대의 그림이 나타났을 때의 놀라운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세 개의 십자가 왼편 사람들은 아마도 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무리로 보인다. 이들은 백성을 사주해 십자가형으로 몰아갔고, 여전히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자세로 논쟁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팔짱을 끼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지켜보자는 사람이나 옆사람과 끊임없이 이 이해가 안 되는 일에 대해 한심하다는 듯이 강변을 일삼고 있다.
이에 비해 함께 못박힐 두 죄수는 군병들 바로 앞에서 거의 알몸으로 체념한 듯한 표정과 자세로 뒤로 묶여 있다. 이들의 십자가는 이미 땅에 세워져 있고, 예수의 십자가는 박힐 땅이 파헤쳐 있다. 자세히 보면 강도들의 십자가와 예수의 십자가 형태가 다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지르던 예루살렘 백성들은 무슨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몰려있지만, 질서를 유지하려는 병사들에 의해 잠시 제지당하기도 한다. 십자가 현장이 골고다 언덕임을 보여주려는 듯 그림의 오른쪽은 경사가 져 있고 멀리 성벽이 보인다.
화가가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중간중간에 어떤 암호나 비밀을 배치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걸 읽어낼 능력이 내겐 없지만, 나는 이 그림의 스케일에 한 번, 디테일에 또 한 번 압도 당했다. 아마도 그림을 그리거나 잘 보는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본다면 훨씬 많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우문이지만, 만약 내가 그 당시 살던 사람이라면 이 그림에 나올지, 나온다면 어느 쪽에 어떤 자세로 서 있을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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