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의 등걸
Posted 2016. 10. 15. 00:00, Filed under: I'm churching/더불어 함께
예배 전에 여유가 생기면 들리곤 하는 대광고 교정 뒷편 정원 한 구석에 오래된 나무등걸이
있다. 공원이나 산사 같은 데 있었다면 엄청 주목 받았겠지만, 그 가치를 잘 못 알아보는 도심지
학교 구석진 자리에 있어 처음엔 있는지도 모르다가 자주 거닐게 되면서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앞뒤로 나란히 붙어 자라던 아름드리 나무가 학생들의 쉼터와 수돗가, 창고 등을 만들면서
방해가 됐는지 잘려나가고 밑동만 남은 신세가 된 형국이다.
옆에 세워놓은 리어카 폭 정도 되는 걸로 봐서 잘려나기기 전엔 아주 우람한 나무였을 것
같은데,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됐는지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아마도 학생들이 앉아
쉬는 쉼터 주변에 과실수와 아담한 나무 위주로 심다 보니 이리 된 모양이다. 그래도 원래
풍채가 있던 나무여서인지 겉껍질이 말라 벗겨졌어도 독특한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가까이 가 보면 잘려나간 단면보다 먼저 여러 기둥이 한데 엮인 것처럼 보이는 세로 외관이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는 서로 연결돼 있지만, 밖으로는 다른 나무들인 것처럼 보여 신기한데,
원래 껍질이 붙어 있을 때도 이런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잘 안 된다. 볼 때마다 마치 바닷가 해안에
있는 주상절리를 닮았단 생각이 들곤 한다.
잘려나간 단면의 나이테도 상당하지만, 틈새 여기저기를 비집고 피어난 풀들은 어쩌면 고목이
여전히 살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 바람에 날려 온 흙들과 바스러진
나무를 토양으로 나무가 오래 간직하고 있던 풍성한 무기질과 수분을 자양분 삼아 풀들이 자라고
자리 잡는 터전을 이룬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느티나무나 버드나무가 아닌가 싶은데, 두 그루로 보였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아랫쪽은 둘 사이가 연결돼 있는 모양새였다. 떨어져 있더라도 꽤 우람한데,
붙어 있는 같은 나무라면 상당한 둘레가 아닐 수 없었다. 심산유곡도 아니고, 이 정도의 아름드리
나무는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닌데, 잘려나간 사연이 궁금하고 아쉽기만 하다.
나무를 베어 등걸만 남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풍경을 만들 수도 있는데,
우리와 기후나 식생이 조금 다르긴 해도 몇 해 전 대만에서 풀들이 나무등걸 주위를 감싸고
한데 어울려 자라나는 모습은 제법 보기 좋았다. 그냥 방치되기보다는 이 정도만 돼도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 같은데, 훨씬 그럴듯한 등걸을 두고 식생 탓만 하기엔 조금 아쉬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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