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게 배운다
Posted 2010. 10. 6. 10:38,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
산에 다니다 보면, 그 전에는 무심코 보거나 듣던 것들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게 나무 뿌리들인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뿌리가 그렇게 깊고
길고 굵고 가지가 많은지는 올여름 태풍으로 뿌리가 뽑혀 넘어진 거목들을 보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사실은 그보다 더 자주 가까이 일상에서 뿌리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었지만 무관심 속에
지내다가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산길의 상당 부분이 뿌리길이란 걸 느끼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산길은 흙길과 돌길 외에 나머지는 나무길인데, 굵은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베어 계단을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길은 길가 나무의 뿌리가 그대로 노출된 채 길 위에 놓여 있어 밟고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날이 가물어 먼지가 많을 땐 의식하지 못했던 뿌리길은 비 온 뒤 땅이 젖어 있거나
질 때 밟지 않거나 조심스레 피해가려 아래를 내려다 볼 때 비로소 눈에 띄는 경우가 많다.
얽히고 설켰다는 것, 칙칙 두르고 감고 있다는 것, 사방 팔방으로 뿌리를 내린다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물론 이렇게 자신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는 뿌리도 원뿌리는 땅속 깊이 박혀 있어
누군가 일부러 파헤치지 않는 한 그 존재를 쉬 드러내진 않을 것이다. 지상에 드러난
것과는 달리 어떤 모습일지, 얼마나 깊고 길지 알 수 없지만, 나무를 지탱하고 숲을 이루면서도
공은 온통 지상의 것들에 돌리는 뿌리에게서 삶의 신비를 한 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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