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Posted 2011. 5. 6.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QTzine 6월호에 실릴 글이다. 제목 때문에 사고 싶은 책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후자였다. 이런 제목은 저자나 출판사나 독자 모두 조심해야 한다. 책임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책을 쓰거나 만드는 사람들이 내용 외에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제목을 어떻게 붙이느냐일 것이다. 내용보다 먼저 눈에 띄기 때문에 제목을 잘 달면 책이 좀 있어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내용과 품질에 자부심을 느껴도 독자들은 외면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경우 조금씩 오버하게 되고, 심하면 내용과는 잘 맞지 않는 미끼용 제목에 현혹된 구매자들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기독교인이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 100』(팬덤북스, 2010)이란 책이 나왔을 때 제목이 꽤 선정적이군, 하고 넘어갔는데, 흑백 쌍벽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나오는 <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도 아니고, 대단한 여행지 안내서도 아닌데 제목이 좀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종합선물세트란 게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과포장 되고, 대표상품 외에 끼어 파는 게 있게 마련이고, 내게 꼭 필요한 것들 외에 군더더기들이 포함되기 쉬워서다. 그러다가 이번에 우연히 다시 눈에 띄어 구입해 읽었는데, 제목만큼 ‘반드시’ ‘꼭’ ‘제발’ ‘무조건’은 아니어도 이런 책 하나쯤은 옆에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교회 도서관에서 독서클럽 회원들을 지도하는 송광택 목사(bookleader.org)는 기독교인들이 폭넓은 독서를 통해 비전의 지평을 넓히고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평생학습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신앙생활 전반과 영성, 자기관리와 인간관계, 가정과 자녀교육, 리더십과 독서 등 7가지 카테고리 안에 100권의 책을 넣어 소개한다.
책 한 권당 세 면씩 할애하고 있는데, 분량에서 알 수 있듯 상세하고 꼼꼼한 독서 가이드라기보다는 인상적인 대목을 들어 책 소개를 하는 형식이라 부담스럽지 않게 훑어볼 수 있다. 이런 책은 처음부터 죽 읽어 내려가지 않아도 되고, 제목만 보다가 관심 가는 대목이 생기면 골라 읽어도 무방하다.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어느 정도 검증된 100권의 책을 소개하다 보니, 아무리 인색해도 그 중에 최소 10권에서 20권 정도는 썩 괜찮은 책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소개 받고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안 읽어본 이들에게는 전혀 몰랐던 책이나 저자에 대한 정보를 소개 받고, 제목만 알았던 책 가운데 제대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고, 나름대로 책을 읽어온 이들에게는 자신이 읽어 온 책들과 여기서 소개되는 책들을 비교하면서 도전과 자극을 받게 되고, 저자의 새로운 소개와 추천을 읽고 이 책이 그랬었나, 하면서 새롭게 읽어볼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은 9회까지 경기를 책임지는 게 아니라 선발로 나와 2-3회 정도를 맡아 주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완투도 쉽지 않지만, 선발이 별 볼 일 없으면 그 날 경기를 제대로 풀어갈 수 없는 법이다. 본선에 진출해 제대로 자웅을 겨루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예선 역할을 하는 책인 셈이다.
나도 처음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이 책을 폈는데, 훑어보다 보니 뜻밖의 열매가 있었다. 대학 시절 인상적으로 읽어 추천하고 싶었지만 종로서적의 부도로 절판된 줄로만 알았던 폴 투르니에의 『인생의 사계절』이 『삶의 계절』(쉼)이란 제목으로 출판사를 바꿔 나왔다든지(아쉽게도 2000년에 나온 이 책마저 절판됐는데, 2005년 쉼북이라는 출판사에서 『인생의 계절들』이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는데, 이것도 구하기 쉽지 않다),
로버트 웨버에 의해 젊은 복음주의자(Younger Evangelicals)의 대표 격으로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로 요즘 한창 주가를 날리고 있는 브라이언 매클라렌의 초기작 『나는 준비된 전도자』(미션월드 라이브러리) 같은 책이 있다든지, 『작은 그리스도 C. S. 루이스』(엔크리스토) 같이 잘 알려진 저술가의 잘 안 알려진 삶을 그리고 있는 책을 알게 되었다.
보너스도 있다. 각 책 소개 말미에 “책 속 좋은 구절”을 두세 줄씩 달아놓아 맛보기를 하게 한다. 앞으로 또 어떤 이가 이런 종류의 책을 쓸지 몰라도, 한 권쯤은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혹은 조금 지루하다 싶을 때면 아무 데나 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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