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릴 때가 아닌데
Posted 2026. 6. 24.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Joy of Discovery
지하철을 타려고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는데, 한쪽에 눈이 내린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니, 한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는 6월 말에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했는데 당연히 눈이 아니라 근처에 있던 벚나무들에서 지하주차장 방풍구 위로 떨어진 벚찌들이었다. 회색 페인트가 시간이 지나면서 바래졌고, 그 위에 벚찌들이 떨어지면서 눈이 내린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아무려면 이 찌는듯한 계절에 내가 실제로 눈이 내린 걸로 착각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주일 아침 교회 가는 길이라서 발걸음과 마음이 여유로웠기 때문에 그리 상상이 되면서 그렇게 여긴 것일 게다. 잠시였지만 정말 눈이 내린 것처럼 보여서 지하철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멈춰서 바라봤던 것 같다.
봄을 아름답게 수놓던 벚꽃들이 진 지 한참 됐고, 그 후 형성된 벚찌들은 길 위나 보도 블럭 위로 뚝뚝 떨어져 지저분하게 터지거나 발에 밟히곤하다가 거의 사라졌는데, 뒤늦게 방풍구 위에 떨어진 것들을 눈이 내린 것으로 여기며 바라봤으니, 약간 오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늦가을 이후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떨어지는 은행 열매보다는 훨씬 점잖기도 하고 보기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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