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별미 묘향뚝배기
Posted 2012. 12. 2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올 성탄절은 유난히도 날이 차가웠는데, 성탄예배를 마치고 슬로우 가든에서 파스타를 먹고 예쁜 케이크를 하나 사 갈까 했는데, 뜨거운 국물을 먹고 싶어 한 로즈마리가 몇 해 전에 먹었던 뚝배기를 생각해내곤 그리로 가자고 했다. 워커힐 지나 구리 가는 길 동구능 못 미쳐 길가에 있는 묘향손만두로 향했는데, 매서운 한파에 우리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많았는지 문전성시를 이뤄 번호표를 받고 20여 분을 기다려야 했다.
옥호 그대로 이북식 만두를 주메뉴로 하는 집인데, 만두국, 만두전골, 찐만두, 뚝배기 등 만두 하나 갖고 이런저런 메뉴를 내고, 겨울에도 오이소박이국수를 내는 집이다. 메뉴는 보이는 게 전부인데, 6천원 받던 뚝배기가 시나브로 8천원이 됐다.
이 집을 알게 된 건 지금은 백주년기념교회로 옮긴 JP를 통해서였다. 소박한 메뉴와 수준급 맛에 반해 로즈마리와도 가고, 미사리에도 분점이 생겨 반가웠는데, 요즘은 안 보인다. 한겨울이 아니면 꼭 뚝배기와 오이소박이국수를 같이 시켜 나눠 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오늘은 워낙 추워서리 둘 다 이구동성, 이구동미로 뚝배기를 시켰다.
반찬은 깍두기와 물김치 달랑 둘인데, 상마다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있어 적당히 덜어 먹게 돼 있다. 인기 메뉴답게 준비하고 있었던지 주문한 지 몇 분이 안 지나 바로 펄펄 끓는 뚝배기가 나왔다. 뜨거운 김과 터진 만두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얼핏 보면 육개장이나 순두부 뚝배기처럼 보인다.
만두를 두 개 정도 풀고 고기와 두부와 콩나물, 고사리 등 야채를 더 넣어 펄펄 끓여 내오는데, 생각보다 매운 맛은 아니다. 맵다기보다는 얼큰한 맛인데, 칼칼할 정도로 매운 맛은 아니어서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만두도 속이 꽉 찬 게 맛있듯이, 뚝배기도 건더기로 한가득이다. 밀도로 보면 국물보다 터진 만두 속이 더 많은 것 같다.
추운데다 한 시를 넘겨 시장끼까지 겹쳐 허겁지겁 땀을 흘려가며 정신없이 후루룩 떠 먹고 반이나 1/3쯤 남으면 남은 밥을 말아 먹는 게 포인트다. 국물에 만 밥이 다시 건더기가 된다.^^ 추어탕과 뚝배기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국물까지 싹싹 남김없이 떠 먹어주는 게 배달민족의 예의랄까 매너일 것이다. 뚝배기를 두 번 정도 들어올리면 저런 각도가 나온다.^^
천원 정도 덜 받으면 이상적이겠지만, 요즘 뚝배기 제대로 내는 집이 없는 걸 감안하면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대다. 요즘은 웬만한 전통 있는 시장 아니고서는 커다란 통이나 솥에 끓이던 것을 국물이 넘칠 정도로 바로 퍼서 내는 뚝배기 파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시장 음식, 서민 음식의 대표 격이었던 뚝배기 파는 집은 일부러 찾아다녀야 겨우 한두 집 눈에 들어올까 말까다.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옆집 사무실엔 옛날 깨알 같은 글자 크기의 문학전집이며 오래된 사전류들이 꽂혀 있고, 한쪽 벽엔 100대 명산을 표시해 놓은 남한 전도가 걸려 있었다. 명산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다리기 지루하던 터에 잘 됐다. 하나 하나 눈으로 훓어가다 보니 막상 실제로 가 본 산은 몇 개 안 된다. dong님과 오대산, 치악산, 가리왕산 가 보자는 얘기 몇 해짼데, 내년엔 그 중 하나라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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