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비춰줄래
Posted 2013. 2. 3.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Kiwi NewZealand와이카토 호수가 볕 좋고 바람 살살 불어 좋은 날 주위 나무들을 초대했다. 자신은 움직일 수 없으니 좀 와 줄 수 있겠느냐고. 나무들도 늘 그 자리에서 매일같이 비슷한 풍경에 심심하고 무료하던 터라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그런데 쉬 움직일 수 없는 건 매일반이니 우리는 그냥 있고 우리와 방불한 우리 그림을 보내겠노라고.
처음엔 나무들이 직접 와 주는 걸 바랐던 호수도 실상은 자신도 몸 전체를 움직이진 못하고 표면만 동원할 수 있다는 걸 알고는 나무 손님들을 예의를 갖춰 맞았다. 덩치가 큰 나무들이 행여 불편할까봐 호수면을 거의 요동도 미동도 않게 만들고선 나무들을 비춰주었다. 손님들이 잘 나오도록 하늘 친구에게도 특별히 부탁해 하늘색이 잘 나오도록 단장을 시켰다.
나무 몇 그루가 호수 전체를 거의 덮다시피 했는데, 평소에 자신들의 키가 얼마나 되는지 조금 궁금하던 터에 호수면에 비취자 생각보다 훨씬 육중하고 커다란 존재라는 게 명확해졌다. 요동도 미동도 않는 건 게스트인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큰 덩치가 조금 움직이면서 물살을 불러 일으킬만도 하건만, 호스트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반대쪽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나무가 있었는데, 방향이 달라 미처 초대를 못 받은 터였다. 한동안 이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그림을 넋놓고 지켜보다가 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선 마음이 급해져 90도 각도로 쓰러졌다. 호수는 깜짝 놀라 물결을 일으킬 뻔 했지만, 곧바로 자세를 바로하고선 급수습모드로 들어가 이 성미 급한 나무도 있는 그대로 비춰주었다. 멀찍이 서 있던 키 큰 나무들도 이 나무가 더 가라앉지 않도록 팔을 벌려 지탱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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