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좋은 날 - 검단산
Posted 2013. 8. 29.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
요즘 구름이 아주 좋은데, 특히 한강 너머 예봉산 방면은 천호대교 지나면서나 미사리에서, 그리고 하남 들어와서 우리집 언저리에서든 어디서나 정말 보기 좋다. 주일 오후 도저히 집에만 있기 아까워 산을 찾았다. 마음 같아선 저 구름을 좀 더 가까이에서 만날지 모를 예봉산을 가고 싶었지만, 운전하고 주차공간 찾는 게 귀찮고 번거로워 그냥 검단산으로 걸음을 뗐다.
강 건너 팔당 방면 하늘만은 못해도 그래도 마주보고 있는 산을 오르노라면 어느 정도 구름 구경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검단산 하늘과 구름은 간직하고 있던 또 다른 매력적인 풍경을 기꺼이 꺼내 보여주었다.
제대로 된 구름을 구경하려면 시야가 확보되는 지점까지 더위를 참고 한 시간은 줄기차게 올라가야 하는데, 한여름 오랜만의 등산으로 다리가 살짝 무거운듯 하면서도 이내 익숙한 리듬을 찾아 타박타박 걸음을 옮기게 해 주었다. 곱돌약수터에서 콸콸 흘러내리는 물로 얼굴과 팔을 허푸허푸 씻어내고 조금 더 올라가니 하늘이 뻥 뚫린 채 내게로 쏟아져 내렸다.
그날 예봉산 구름이 정적인 풍경화 이미지로 다가왔다면 검단산 구름은 동적인 점묘화 이미지로 내게 쏟아져 들어왔다. 어딘가를 향해 급히 추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산 아래로 내려꽂는 번개처럼 보이기도 하는 구름들이 유난히 파아란 하늘을 맘껏 수놓고 있었다.
곱돌약수터도 지났겠다, 저 위로 보이는 정상에서 보는 거나 예서 보는 거나 별반 다를 게 없겠고, 예서 받는 구름 세례도 흡족했기에 잠시 이쯤에서 내려갈까 하다가 흘린 땀이 아까워 내친김에 다리에 힘 주고 헐떡고개를 지나 정상을 향했다.
그늘 하나 없는 정상에선 왼쪽으로 예봉산부터 양평 방면 산들이 환히 보였고, 그야말로 막힌 구석이 없는 탁 트인 하늘에선 구름들이 자유자재로 노닐고 있었다. 등산객 한 사람이 벤치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팔을 쭉 뻗어 풍경을 담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보였다.
정상 옆 그늘에 배낭을 내려놓고 깔판을 깔고 털썩 주저앉아 물병으로 목을 축인 다음에 작은 책을 꺼내 한 챕터를 읽는데, 이 순간 산중(山中), 아니 산정(山頂) 독서의 감흥은 다른 무엇과 견주거나 비할 바 없는 풍성한 안식이었다.
한 시간 정도 내려와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교차로에서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면서 눈을 들어 바라본 하늘엔 산 위에서만큼이나 가득한 구름이 하루를 슬슬 마감하고 있었다. 저 멀리 저녁노을이 막 시작되고 있었고, 아직 빛을 잃지 않은 태양을 힘 주고 바라보는 역광에 달리는 차들과 주변 풍경이 조금 느릿느릿 겸손하게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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