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만 들어선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
Posted 2013. 9. 8.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침례교 전국여성선교연합회에서 만드는 월간 <성광> 편집자에게서 9월호 특집으로 꾸미는 독서에 대한 글을 청탁 받고 A4 두 장을 써 보냈다. 이런 잡지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는데, 알고보니 1958년부터 나온 잡지라니, 침례교 여성들의 의식도 만만찮은 것 같다. 편집자가 나를 어떻게 알고 청탁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주제가 주제니만치 써 보냈다.
오래 전 대학 시절 한국에서 오래 일한 외국인 선교사에게 들었던 말 한 마디가 지금도 종종 귓가에 울리고 뇌리에 선명하게 인 치듯 박혀 있다.
Korean Christianity is just SHOUTING and LISTENING.
한국 교회를 오래 겪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기독교는 좋은 점도 많지만 아쉬운 점 한 가지가 있는데, 한쪽에선 일방적으로 외치기만 하고, 다른 쪽에선 별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듣는 데만 익숙하다는 말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스스로 읽고 공부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듣는 설교, 떠먹여 주는 설교에 의존한다는 조금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요즘 형편은 어떨까?
확실히 그때보다 여러 면에서 나아지긴 한 것 같은데, 그가 예리하게 관찰한 본질은 여전한 것 같아 보인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조금만 검색하면 내로라하는 유명 설교가들의 설교를 손쉽게 들을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기독교 TV들을 통해 24시간 설교를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설교에 대한 의존도는 그리 줄지 않은 것 같다.
개인적인 QT나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그리스도인들 상당수는 여전히 설교를 통해서만 성경을 알아가고, 신앙성장을 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유감스럽게도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설교가 우리의 영성을 형성시키고 성숙해 가도록 자극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평생학습시대를 맞아 설교에만 학습을 의존하는 한국교회의 오래 된 풍토, 전반적인 분위기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QT와 성경공부도 좀 더 새롭게 강조되어야 하고, 동시에 잘 써진 기독교 서적들을 읽고 나누는 일이 좀 더 활발하게 일어나야 일방적으로 외쳐대고,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여전히 교회 안에 만연된 분위기를 개선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적 거인들의 책부터
교회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책을 읽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잘 써진 좋은 책을 읽으면서 성경이나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거나 가르쳐 주지 않는 현실 세계의 실제적이고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일상과 여러 관계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실력과 안목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칫 신앙생활의 여러 부분을 말씀과 기도라는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만능공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가 살아봐서 알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상황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고,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더 많은 고민과 생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도움을 주는 게 그 분야에 대해 잘 써진 책이다. 비록 우리가 찾는 똑부러진 답을 주지 않을진 몰라도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갈 것인가에 대해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던져주고, 구체적인 길잡이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소설이나 다른 분야의 책을 읽을 때도 무작정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건 별로 영양가가 없는 일이고, 실력이 있다고 인정을 받는 저자들을 알아두는 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신앙서적도 여러 주제, 분야에 걸쳐 정평이 나 있는 실력자들을 알아두고, 그이들의 책부터 읽기 시작하는 게 지혜로운 일이다. 존 스토트, 유진 피터슨, 필립 얀시, 고든 맥도날드 같은 외국 저자들과 강준민, 김영봉, 김형국, 송인규 같은 국내 저자들의 책부터 읽기 시작하는 게 안전하고 든든한 기초를 놓아줄 것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급하게 따라 읽을 필요 없고, 읽기 쉽고 재밌다고 해서 너무 간증 일변도의 책에 현혹될 필요도 없다. 책을 읽다 보면 내공이 쌓이면서 어떤 게 좋은 책인지 판별해 내는 눈을 기를 수 있다. 좋은 저자 리스트를 알아두는 일과 함께 기독교 서적도 말씀과 기도 같은 경건생활만 다루지 않고, 기독교의 기본 진리, 기독교 세계관, 교회사, 전도와 선교, 신앙 전기 등 다양한 주제가 있다는 것에 눈을 뜨고 한 분야씩 읽어나가면서 균형 잡힌 안목을 형성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시간을 떼어놓고, 북 클럽을 만들고
책이 아무리 좋고, 책 읽기를 결심한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시간을 떼어놓는 것이다. 일주일 중에서 어느 시간대가 이런저런 일과 상황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읽기 좋은 시간대인지, 한두 번 하다 마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독서할 수 있는 시간대인지를 곰곰 생각하면서 결단할 필요가 있다.
의외로 책 읽기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하려는 이들이 많은데, 십중팔구 한두 번 하다 중지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의외로 그냥 버려지는 시간들이 적지 않을 텐데, 가령 즐겨보는 드라마나 스포츠중계 같은 것을 과감히 포기하기만 해도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시간은 건질 수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특별해진 요즘은 등산들을 많이 가는데, 오고가는 지하철에서, 그리고 산행 중 적당한 쉼터에서 30분 정도 책을 펴서 읽는 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능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슷한 필요를 갖고 생각을 같이 하는 이들과 북 클럽을 만드는 것이다. 매주 또는 격주에 한 번씩 시간을 정해 놓고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같은 책을 읽거나 읽어 온 것을 부담 없이 나누는 책읽기 모임을 시작하면 여러 가지 유익을 경험할 수 있다. 서로 지치지 않도록 자극도 주고, 모르는 건 서로 토론하면서 알아나가고, 나 혼자 읽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다른 사람의 나눔을 통해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시험적으로 30분이면 돌아가면서 다 읽을 수 있는 소책자를 읽고 나눈다든지, 기독교 잡지에 실린 좋은 칼럼을 복사해 함께 읽고 나누다 보면 책을 읽고 함께 하는 토론과 나눔이 얼마나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개 좋은 북 클럽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막상 자신이 북 클럽을 시작하는 건 거의 엄두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 기존에 우리가 하고 있는 큐티나눔 모임이나 소그룹에서 한두 달 정도 스페셜하게 책을 읽고 나누는 별미를 맛보자고 제안해 본다든지, 주변의 안 믿는 전도 대상자들을 위해 종교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성경공부 시간보다는 그저 큰 부담 없이 와서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의견도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도 북 클럽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기독교 서적만 아니라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 가령 소설 <오두막>, <엄마를 부탁해> 같은 책을 읽고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해 나가는 게 좋을 것이다(김영봉 목사의 책들은 이런 책들에 나오는 주제들을 잘 풀어주고 있다).한편 혼자서 또는 북 클럽에서 책을 읽으면서 받은 도전이나 새로운 발견은 우리를 지금 있는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고 자라가도록 하는데, 블로그 같은 데 독서일기나 리뷰를 써 보는 것도 중요한 훈련 가운데 하나이다. 저자의 주옥같은 구절을 발견하면서 혼자서만 감동을 간직해도 되겠지만, 아직 책 읽기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들이나 길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우리가 정리한 짧은 책 소개나 리뷰는 신선한 자극이 되어 교회 안에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도록 돕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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