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천 미터 넘는 용문산 장군봉까지
Posted 2014. 9. 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종일산행
올여름 막바지 8월 마지막 토요일을 그냥 보내기 서운해 전날 밤 못 본 상이와 혈이 그리고 적이가 나오는 <꽃보다 청춘> 마추피추 편 재방송을 아침 8시에 챙겨 보고, 배낭에 물 한 병과 과일 조각을 넣고 양평 백운봉을 향해 나섰다. 보통은 집에서 9시쯤 출발해 10시 전엔 사나사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 여름이라 게으름을 피웠더니 두어 시간 늦어 정오를 10분 남겨두고서야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봄까지만 해도 토요일이라 하더라도 오르내리는 동안 십여 명의 등산객을 볼까 말까 할 정도로 한적한 곳인데, 물 좋은 사나사 계곡을 찾은 막바지 피서객들이 제법 보였다. 그러고보니 늦가을과 겨울과 봄엔 왔어도 여름철 백운봉 산행은 처음이다. 등산로 풀들이 거의 허리께까지 무성하게 자라고 수북히 덮여 길이 잘 안 보였다.
그래도 몇 번을 온 길인데, 하면서 올라갔지만, 중간에 길을 잃고 다른 데로 방향이 새고 말았다. 4부 능선, 6부 능선 팻말이 나오면서 백운봉과 장군봉으로 방향이 갈리는 능선 정상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런 평탄한 숲길이 나오다니, 방향이 잘못됐다 싶었지만, 중간에 다른 능선과 만나겠거니 하고 내쳐 올라갔다. 결국 백운봉 가는 능선 정상이 아니라 함왕성지가 나왔다. 제법 넓은 쉼터에서 단체 산행에 나선 팀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오른쪽 백운봉 방향으로 조금 가니 엉뚱하게 8부 능선 팻말(4.5)이 보였다. 원래 다니던 등산로에선 4부 능선(3.3)-6부 능선(3.4)에 이어 바로 능선 정상(3.5)이 나와 8부 능선 팻말은 볼 수 없는데, 여기에 숨어 있었다(앞자리수가 다른 걸로 봐서 애초에 길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오늘 길이 좀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능선이 보이는 길을 따라 더 올라가니 드디어 갈랫길 이정표가 보였다.
그런데 사나사에서 2.8km 올라온 이 지점에서 목표로 했던 백운봉까진 1.6km 남았는데, 반대쪽 장군봉까지도 똑같이 1.6km를 더 가야 한다고 하니 잠시 계산이 복잡해졌다. 한쪽이 조금이라도 짧아야 그리로 갈 텐데, 같은 거리면 완전히 Sliding Doors 영화 찍게 생긴 거다.^^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더라면 이런 팻말이 나오는 능선 정상에서 백운봉까진 650m 남았다고 적혀 있었을 터니 당연히 그리로 가겠지만, 같은 거리가 남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남은 거리가 같다면 굳이 백운봉까지 갈 게 아니라, 안 올라가본 새 봉우리에 도전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방향을 틀었다. 게다가 장군봉이면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용문산 정상 가섭봉(1,157m) 가는 길에 있고, 천 미터가 넘으니 백운봉(940m) 못지 않은 주위 경관을 보여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용문산 정상까진 다시 1.5km를 더 가야 해 조금 부담스럽겠지만, 장군봉까진 가볼만 할 것 같았다.
장군봉 가는 길은 약간의 오르막은 있었지만, 그리 험하지 않아 중간에 간단히 요기를 하고, 2시 반쯤 봉우리 표지석이 서 있는 지점에 다다랐다. 장군봉은 1,068m니 6-7백 미터 대의 동네산들은 물론이고, 백운봉보다도 백 미터는 더 높은 봉우리였다. 조만간 올 생각은 있었지만,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우연히 들린 산이 천 미터대의 산이니, 이것도 재밌는 경험이다.
그런데 천 미터가 넘고, 이름도 멋진데 뭔가 이상했다. 주위가 탁 트여 왼쪽으로는 용문산 최고봉 가섭봉이, 그리고 왼쪽으로는 백운봉 일대가 두루 보여야 하는데, 무슨 봉우리가 야산 쉼터처럼 생긴 게 아무것도 안 보였다. 이런 낭패가! 가끔 이런 봉우리가 있는데, 생긴 게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다. 좌우지간 얼떨결에 용문산 코앞까지 갔다 왔다. 그럼, 다음엔 용문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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