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악보
Posted 2015. 1. 2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회의를 시작하면서 누군가 찬양을 한 곡 하자고 했는데,
또 다른 누군가 곡명을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이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악보를 찾아
카톡으로 보내왔다. 잠깐의 인터벌은 있었지만 어색해지거나 크게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카톡이 없었다면 누군가 가사를 한 줄씩 불러주거나 눈치껏 옆에서 큰소리로
부르는 이들을 따라 군데군데 가사나 박자를 놓친 채 따라 불러야 했을 것이다.
작은 문화충격이다. 모임의 찬양은 인쇄된 찬송가 책을 보거나 여러 곡의 가사와
악보를 한 장에 복사된 걸 보거나 스크린에 띄운 가사를 따라 부르는 데만 익숙하고
으레 그렇게 하는 걸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런 거 없이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으로
악보가 전송돼 손가락으로 화면을 키워가며 대충 따라 부를 수 있다니, 어느새
이런 세상이 됐구나 싶었다.
하긴 몇 달 전에도 우리집에서 모인 가정교회 모임에서 그날 찬양 인도를 맡은
젊은 친구가 종이 악보 대신 카톡 악보를 준비해 온 적이 있긴 했다. 그 날도 작은
화면에 나오는 가사를 보면서 신기해 했었는데, 이번엔 바로 실시간으로 가사와
악보가 중계돼 조금 더 놀랐던 것이다.
카톡 화면으로 제공되는 노래를 보면서 따라 부르려니 종이도 낭비하지 않고,
복사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어 편리성으로 치자면 흠 잡을 구석 없지만, 이런 게
문화로 정착되면 전통적인 찬양의 장중함이나 멋스러움은 점점 찾아보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령 어떤 합창단이 무대에 도열해 악보를 펴는 대신 조그만 카톡
화면을 열라 기웃거린다면, 이건 생각만 해도 겁나 끔찍하지 않은가.^^
작은 모임도 이렇지만, 더 큰 변화는 교회 정규 예배나 대회들이 성경 책이나
찬송가 책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저 강단 너머 커다란 스크린에 뜨는 성경 구절과
가사만으로도 가능해지는 추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뭐, 책이든 종이 한 장이든,
스크린이든 몇 인치 스마트폰 화면이든 중요한 건 그 속에 담긴 말씀과 가사,
곡조겠지만, 점점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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