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미끄럼틀
Posted 2015. 4. 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산의 터줏대감 가운데 상위 랭커는 바위다. 최상위 랭커를 두고 역시 도처에 즐비한
나무들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흔하고 널린 게 바위인데,
압도적으로 크고 특별하게 생긴 친구들도 볼만 하지만, 길가에 흔하게 서 있는 그저
그런 애들도 문득 시선을 끌 때가 있다.
사인암에서 계원대 후문으로 거의 다 내려오는 길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생긴 게 꼭 미끄럼틀 같아 보였다. 폭은 1미터가 조금 안 되고, 길이는
2미터쯤 됐는데, 30도 남짓 완만한 각도로 서 있는 게 그날 따라 그리 보였다.
이 미끄럼틀의 주고객은 마른 낙엽과 잔가지들이었는데, 가끔씩 기분이 내킬 땐
흰 눈이 한동안 머물다 가게 하곤 했다. 사시사철 이 자리에 서 있다 보니 미관에도
제법 신경을 써 여름엔 물샤워로 때 빼고 광을 내기도 하고, 이용하는 고객들의
엉덩이가 아프거나 까지지 않도록^^ 이끼 쿠션을 장착하기도 한다.
미끄럼틀치곤 인심도 후해 한 번 받은 손님은 곧바로 내려보내지 않고 마치
자유이용권이라도 가진 양 지치거나 무료해 할 때까지 머물게 하는데, 이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호응이 높다. 이쯤 되면 단순 미끄럼틀이라기보다 안락의자라 해도
되겠는데, 현재 장기투숙 중인 손님들의 숙박 유효기간은 봄비 내릴 때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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