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Posted 2015. 10. 2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오랜만에 지갑을 샀다. 줄곧 반지갑을 써 오다가 지난 십 년 가까이는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편한 미국식으로 두 번 접는 노티카 까만색 3단 지갑을 애용했는데, 미처 꺼내지
않은 채로 세탁기를 돌리는 바람에 못 쓰게 돼 새 지갑이 필요했다. 집에 괜찮은 반지갑이
두어 개 있지만, 양복을 잘 안 입고 다니는 요즘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엔 다소 큰 느낌이
들어 적당한 게 눈에 띄면 새로 개비할 참이었다.
그 때까진 임시 방편으로 명함 지갑을 썼는데, 지폐를 한두 장 접어 넣고, 신용카드도
한 장만 넣으니 갖고 다닐만 했다. 5년 전쯤 타이베이 여행할 때 지우펀(九份) 가죽 소품점에서
8천원 주고 산 밝은 브라운 색인데, 다시 가면 또 사 오고 싶을 정도로 가성비가 좋다. 그래도
본래 용도로 써야 할듯 해 슬림한 소형 지갑이 어디 없을까 인터넷도 찾아 보고, 팔만한
가게가 보이면 둘러보곤 했는데, 내가 원하는 슬림한 스타일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특별히 맘에 드는 게 안 나타나면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많이 쓰는 카드형 지갑을 사서
목걸이 줄을 떼고 사용할까도 싶었지만, 그건 실용적이긴 해도 웬지 약간 체신머리 없어
보일 것 같아 망설여졌다. 지난 여름 미국에 갔을 때 쓰던 거 비슷한 걸로 하나 사 왔어야
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깜빡 잊고 그냥 왔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 이천 아울렛에서 임자를 만났다. 니트 셔츠를 하나 살까 하고 올젠
(Olzen)에 들렸는데, 셔츠를 고르다가 한쪽 구석에 놓인 짙은 브라운 지갑이 눈에 들어왔다.
앞뒷면 스타일도 맘에 들고, 3만원대 세일 가격도 적당했다. 명함지갑 크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조금 작다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전처럼 돈을 펴서 넣을 수 있고^^, 거의 모든 거래를
카드로 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지폐를 여러 장 넣고 다닐 일도 없어 집어들었다.
퇴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주머니에서 차 열쇠와 핸드폰 그리고 지갑을 꺼내 책꽂이
위에 늘어놓는 일인데, 설마 다시 몇 년 뒤 개비할 요량으로 미필적 고의로 세탁기 돌리는
일은 없겠지.^^ 하긴 그런 것도 삶의 한 순간이고, 있을 수 있는 해프닝에 미시사(微視史)의
한 대목일 테니 주의는 하지만 장담할 일은 아니겠다.